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34

세가지 사랑 , 정사

오랜만에 만나는 오스트리아 영화는 20대 소냐, 30대 니콜, 40대 에바의 사랑을 소재로 한 세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아니, 옴니버스 영화란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있다. 어느날 밤 세 여자와 세 남자의 일상이 우연하게 서로 겹쳐지게 되는 과정을 그려나간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아파트 건물의 집집마다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모습을 담담하고 조용히 보여줌으로써, 서로 사랑하고 집착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자 일상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는 서로다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장편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여자의 모습이 담겨있는 스냅사진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갑..

레밍

완벽해보이는 중산층 가정 또는 그 구성원이 전혀 의외의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내재된 치부나 약점 등을 드러내보이면서 스스로 붕괴해가는 과정을 스릴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들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인 예다. 알프레드 히치콕도 등에서 중산층의 불안증을 다뤘다. 독일계 프랑스 감독 도미니크 몰의 2005년 칸영화제 개막작 은 히치콕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한눈에 드러내는 스릴러 영화다. 스칸디나비아에서만 서식한다는 쥐의 일종이 ‘레밍’이 일상의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계기가 된 점에서 와 일맥상통하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여자주인공 베네딕트(갱스부르)의 아이덴티티가 모호해진다는 점에서는 을 연상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일탈의 욕구와 무의식을 핵심 주제로 하고 있으며, 특히 ‘레밍’자체가 어..

오프사이드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이란과 바레인의 마지막 경기. 이란 수도 테헤란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축구열기에 후끈 달아 올라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마다 대형 이란 국기를 휘두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다. 버스 한쪽 구석에 축구광 십대 소녀 미리엄도 앉아있다. 남자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이란 법에 따르면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경기를 구경할 수 있지만, 경기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군인들의 눈에 뜨이면 바로 퇴장조치를 당하거나 풍기문란 죄로 체포될 것이 분명하다. 일단 입장권을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아무리 남장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티가 나기 때문에 정식의 매표소에서 표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암..

아이가 나오는 공포영화가 더 무섭다 1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대부분 사이코 살인마, 귀신 또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악마 등이다. 예외적인 존재가 바로 어린이. 처럼 어린이가 살인마이거나 악령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들이 적지 않다.뉴스위크지는 최근 기사에서 흔히 ‘천사’의 이미지로 인식돼온 어린이가 영화 속에서 절대 악으로 등장할 때 관객은 더 강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을 비롯해 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포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화 속 어린이 악마는 부모-자식 간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혈연관계의 해체, 그리고 인류사회의 뿌리깊은 신뢰기반 붕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가 악의 존재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공포영화들을 소개한다. 1956년, 윌리엄 마치 감독영국에..

유하의 '비열한 거리'

갱스터 혹은 조직폭력배를 영화 속에서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식이고, 또하나는 마틴 스코세즈식이다. 코폴라식은 ‘대부’로 대표되는 비장미가 특징이다. 여기에서 조폭은 폭력과 불법을 일삼는 범죄자들이지만, 보통사람들이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와 우직함, 그리고 의리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남성성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비열한 거리‘ ’ 좋은 친구들‘로 대표되는 스코세즈의 조폭영화에서는 코폴라가 ’대부‘에서 창조한 고상하고 과묵한 남성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상스럽고 수다스러우며, 감정기복이 심하고 작은 이익에 배신하는 주변부 인간들뿐이다. 두가지 유형에 하나를 더한다면, ’저수지의 개들‘과 ’킬빌‘로 대표되는 퀜틴 타란티노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조폭영화는 ..

<티켓>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가 있다. 은 으로 국내에 잘알려진 이탈리아 거장 감독 에르마노 올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가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세사람이 각각 카메라를 들고 이탈리아 로마행 유럽 횡단기차에 올라탔다. 이들은 1등칸부터 3등칸에 이르기까지, 기차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면서 여러 인생을 이야기한다.기차란 디지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묘하게도 아직까지 인간적인 온기가 남아있는 아날로그의 공간이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부딛히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있다.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올미감독은 손자의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1등칸에 올라탄 노신사의 마음속 여행을 뒤좇는다. 그는 막 헤어진 여성의 친절..

클림트

오스트리아 빈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화가 클림트(존 말코비치)의 병실로 에곤 쉴레(니콜라이 킨스키)가 찾아온다. 한때 ‘빈의 난봉꾼’으로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화가 클림트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삶과 죽음의 보잘 것없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그는 에곤 쉴레의 병문안을 계기로, 논리도 이성도 없는 무의식과 과거의 세계 속을 헤매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로 되돌아가, 세기말의 퇴폐와 흥분이 공기를 짓누르고 있던 1900년. 오스트리아에서 퇴폐화가로 온갖 비난에 시달렸던 클림트는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선 열렬한 호평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화가가 된다. 축하파티에서 그는 프랑스 댄서이자 영화배우인 레아를 소개받게 되고, 그녀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 현실과 꿈을 오가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

밴디다스

서부개척시대.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멕시코로 돌아온 우아한 미녀 사라 (셀마 헤이엑)와 거친 성격의 하층계급 여성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출신배경만큼이나 서로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상대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않지만, 우연한 일로 인해 손을 잡게 된다. 철도건설을 위해 무자비하게 멕시코 농민들을 수탈하는 미국은행에 의해 사라는 아버지를, 마리아는 생명처럼 소중한 농토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라와 마리아는 가족을 위해, 나아가 멕시코의 힘없는 민중들을 위해 미국은행을 털기로 하고, 2인조 미녀은행강도로 나선다. 프랑스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는 볼거리와 속도감있는 액션에 무게를 둔 작품이란 점에서 , 베송이 그간 할리우드와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내놓았던 일련의 영어영화..

하프라이트

레이첼 칼슨 (데미 무어)은 ‘황금단도상’ 등 저명한 추리문학상을 휩쓴 미국 여성작가다. 영화가 시작되면 레이첼이 런던의 아담한 자택서재에 앉아 구식 타이프라이터로 작품을 쓰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국인 남편이 편지 한장을 들고 서재로 들어온다. 그는 영국 출판계가 알아주는 실력있는 편집자이지만, 스릴러 작가로는 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방금 읽은 편지도 스릴러 소설의 출판을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레이첼은 실망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좋은 작가야. 하지만 출판사측에서 스릴감이 좀 부족하다고 하니깐 조금 보완해서 다시 보내보는게 어때.” 만약 레이철의 남편이 쓴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 였다면, 출판사측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스릴감이 부족한데다가, 엉성하기 ..

[내머리속의 지우개]..그리고 알츠하이머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예전 국내외 영화들에서 백혈병과 폐결핵으로 죽어갔던 수많은 미인들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 시절, 백혈병과 결핵에 걸린 여자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 새하얀 얼굴에 하늘하늘한 몸매를 지닌 섬세하기 짝이없는 미인이었던지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고통을 참는거라든지 가냘프게 쿨럭쿨럭 기침을 하던 모습이 어찌나 우아해보이던지...솔직히 어린시절 한두번은 흉내까지 내봤던 기억이 나네요.(흐억!) [춘희]를 영화로 리메이크한 [카미유]의 그레타 가르보에서부터 [라스트 콘서트]의 스텔라(배우 이름은 모르겠습니다)까지, 그리고 [선물]의 이영애를 비롯한 숱한 한국의 미인 불치병 환자들까지, 이 계보에 오른 여성은 아마도 수없이 많을 겁니다. [내머리 속의 지우개]는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