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67

나오미 왓츠

피터 잭슨처럼 저 역시 오래전 KBS 명화극장에서 방영했던 흑백 오리지널 ‘킹콩’에 매료당한 어린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해골섬의 원주민들에게 붙잡혀 기둥에 묶인채 울부짓던 ,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매달린 킹콩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던 여주인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게 지금도 생생합니다. 킹콩의 우왁스럽게 큰 털투성이 손, 잠자리 날개같았던 여자의 얄팍한 드레스와 한없이 가냘픈 흰 피부의 몸매와 금발머리가 왜 그렇게도 인상적이었던지요. 한편의 영화로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배우로서 엄청난 행복일 겁니다. 그러나 적지않은 부담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33년작 오리저널 ‘킹콩’에서 여주인공 앤 대로로 출연했던 페이 레이는 몇해전 죽기전 인터뷰에서 ‘킹콩’이 ″평생의 영광이자 짐..

마크 러팔로

‘킹콩’의 나오미 왓츠에 이어, 오랜 무명시절을 거친 스타배우 또한명을 소개합니다.바로 , 마크 러팔로(35)입니다. 이름만 듣고는 누군지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울 지 모르겠지만,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 이 남자의 얼굴이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상대역 여배우들이 쟁쟁하지요. 기네스 펠트로(뷰 브롬 더 탑) , 제니퍼 가너(완벽한 그에게 딱한가지 없는 것) ,맥 라이언(인 더 컷 ), 리즈 위더스푼(저스트 라이크 헤븐), 커스틴 던스트(이터널 선샤인) 등 톱클래스 여자스타들이 그와 사랑에 빠졌습니다.물론 영화 속에서 말이죠. 한번 보면 잊혀질 것 같은 평범한 이미지를 가진 이 남자의 어떤 구석이 도대체 매력적인 걸까요.그건 옆집 청년같은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삐딱하고 대책없을 것 같은,..

너무 아름다운 그녀-다이앤 레인

바람부는 날 뉴욕 교외에 살고 있는 부인이 맨해튼으로 쇼핑을 나갑니다. 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레인코트 자락이 펄럭이면서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드러나고, 금발머리가 반짝거리면서 흩날립니다. 거리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넘어져 다리에 상처를 입은 그녀에게 검은 머리칼의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바로 옆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가 상처를 치료하라고 권합니다. 바람에 부딛혀 가뜩이나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에 살짝 붉혀지고, 여자는 그런 자신이 우스워 낯선 방에 혼자 앉아 다리의 피를 닦아내면서 또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날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이 흔들어놓은 것은 단지 그녀의 머리카락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이었을까요. 수줍은 중산층 부인은 그리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카페 화장실..

카메론 디아즈

‘퍼키(perky)’란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에 적힌 뜻은 ‘명랑 ,쾌활한’입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명랑 쾌활’보다는 약간 ‘엉뚱’쪽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생긴 건 예쁘장한데 하는 짓은 엉뚱 발랄한 엽기녀를 가르킬 때 많이 쓰이는 수식어이죠. 스크린에도 ‘퍼키’에 딱 어울리는 여배우가 한 명있습니다. 푸른 눈의 늘씬한 금발 여배우에게는 체질적(?)으로 잘 끌리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카메론 디아즈(33.사진)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미모로만 판단하기엔 그녀가 너무나 엉뚱하고 별나기 때문이지요. 그리스 여신상도 울고갈만한 이 팔등신 금발 미녀가 하는 짓마다 별나고 , 영화고르는 취향 또한 별나기 짝이 없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당신이 이 남자의 연기를 본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상의 트로피를 그의 발 밑에 던지고 싶을 것이다. 영화가 올림픽경기라면 그에게 아낌없이 금메달을 주겠다.” 연기자로서 이런 극찬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칭찬엔 인색하기로 소문난 뉴욕타임스의 영화평론가들로부터 이처럼 최상의 격찬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미국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사진)입니다. 미국 현대소설가 트루먼 카포테(1924~1984)의 일생을 그린 영화 ‘카포테’에서 그는 명불허전의 탁월한 연기로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논픽션 ‘인 콜드블러드’ 등 걸작 소설들을 남긴 카포테의 치열한 강박관념과 이기적 천재성,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갈등까지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

패트리샤 클라크슨

‘스테이션 에이전트’는 난장이 핀이 작은 시골 마을의 낡은 간이역 역사로 흘러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채 방치된 이 곳에서 살면서 핀은 난생처음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놓는 법을 서서히 배우게 되지요. 이 마을에는 남편과 별거해 홀로 사는 아마추어 화가 올리비아란 여성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어수선한 행동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던 핀은 올리비아가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후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채 자신보다 더 황폐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40대 초반의 나이에 아들의 죽음과 파탄난 결혼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여자의 아픔이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은 것은 패트리샤 클라크슨(47)이란 배우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클라크슨이란 ..

샘 셰퍼드

‘돈 컴 노킹’의 주인공 하워드는 한물간 서부영화 배우입니다.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전형적인 인물이지요. 어느날 영화 촬영 도중 덜컥 도주해 무작정 몇십년만에 찾아간 어머니로부터 그는 자신에게 아들 한명이 있다는 천청벽력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몬태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평생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었던 아들은 물론이고 딸까지 만나게 되지요. 자신을 향해 온갖 물건을 내던지며 화를 내는 아들과 ,아버지를 너무나 그리워해왔다고 털어놓는 딸을 바라보며 온갖 복잡한 심경이 엇갈리던 하워드의 얼굴, 그리고 아무말 없이 자식을 품에 안던 그의 구부정한 어깨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장면입니다. ‘돈 컴 노킹’에서 샘 셰퍼드(63)가 없었다면 , 하워드의 고독하고 허무한 내면이 ..

이자벨 위페르

#1여자는 비엔나 음악학교의 저명한 피아노 선생님이다. 그녀는 무대 한켠에 서서 여제자가 독주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학생은 엄격한 선생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이때 동료 남학생 한명이 악보를 넘겨주겠다며 무대위로 올라간다. 남자는 몇마디로 여학생을 웃기고, 덕분에 긴장이 풀어진 그녀는 평소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연주실력을 발휘한다. 이 모든 것을 선생은 조용히 무대 밖으로 나가 탈의실로 들어간다. 잠깐 황망한 시선과 동작으로 옷들 사이를 걸어다니던 선생은 여학생의 코트를 찾아내고 , 유리잔 하나를 깨서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결국 연주를 마친 학생은 유리조각에 손을 다친다. #2남자제자를 향한 사랑을 거절당한 선생은 겹겹의 문을 헤치고 연주홀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녀의 지갑에는 ..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지]의 마지막 장면, 기억나시나요? 북아프리카로 추정되는 낯선 도시에서 허름한 옷을 걸친 남자주인공이 한 손에 간단한 음식이 담긴 듯한 봉지를 들고 걸어가던 모습. 왠일인지 낡은 가죽 샌들을 걸친 그의 맨발이 아직도 유난히 강렬하게 기억나네요. 한때 존경받던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이제 맨발에 낡은 옷을 걸친채 외국을 떠도는 방랑객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걸었던 사랑과 욕망이 모두 지나간 뒤 , 허허롭게 홀로 남은 그의 삶은 과연 파괴된 것일까요 , 아니면 자유로워진 것일까요. [레이디스 앤 젠틀맨]에서 이전보다 좀더 나이들고, 좀더 마른 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10년전 [데미지]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를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제레미 아이언스는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챙겨보기 시..

줄리안 무어

줄리안 무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용감한 여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60년생이니 올해 나이 48세. 인형같은 외모(제눈엔 무척 예뻐보이지만) 가 아닌데다가, 30대가 돼서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니 꽃같은 어린 나이도 아닙니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이죠( 수전 서랜든, 골디 혼처럼 인생의 파트너는 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무어가 용감한 이유는 첫째,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벗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엉덩이나 가슴 노출 수위를 놓고 온갖 구실과 조건을 내거는 여배우들과 달리 무어는 감독이 요구하면, 아니 작품이 요구하면 용감하게 옷을 벗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아직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에 출연했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