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레니 리펜슈탈

bluefox61 2006. 6. 26. 23:50

레니 리펜슈탈(1902~2003).


그 이름만큼이나 100여년의 영화역사상 격찬과 비난, 천재와 악마로 평가가 엇갈렸던 감독은 없었다. 그녀는 ‘히틀러의 영화감독’이란 저주의 낙인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리펜슈탈 이전, 또 그 이후에도 다큐멘터리의 본질과 힘을 그녀만큼 꿰뚫어보았고 그것을 진정한 예술인 동시에 프로파간다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감독은 없었다.



리펜슈탈이란 이름이 아직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 히틀러와 나치즘에 일조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적 잣대로도 그녀의 천재적 영화적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폄훼할 수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하겠다. 또한 리펜슈탈은 역사 속에서 영화감독이 어떤 책임의식을 지녀야하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연인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호기심 따위는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리펜슈탈은 과연 적극적인 친나치주의자였나, 아니면 당시 상황에서 그저 영화작업을 위해 정권과 손을 잡은 현실주의자였을 뿐이었는가.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신념의 승리>(1933) <의지의 승리>(1935)는 의도적으로 나치즘을 찬양하려는  선전영화인가, 아니면 역사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인가. 다큐멘터리에서 의도적인 편집과 예술적인 기교는 어느 선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들은  리펜슈탈 자신의 87년 자서전과 많은 저서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백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번역출간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도서출판 마티)’은 모처럼 국내에 소개되는 리펜슈탈에 대한 본격적인 전기다. 저자 로드리 설킬드(33년생)는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영화보다는 등반과 탐험분야 전문가라는 배경이 다소 의외다.

저자는 리펜슈탈이 촉망받는 현대무용가에서 무성영화배우 (<성스러운 산(1927)> <피츠 팔뤼의 하얀 지옥(1929)> <하얀 광기(1931)> 등 주로 산악영화)를 거쳐 <푸른빛>(1932)으로 감독 데뷔, 히틀러가 이끄는 제3제국에서 가장 걸출한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전후 추락을 거듭해 사진작가로 재평가받기까지의 격동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해나가고 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의지가 강했던 리펜슈탈이 히틀러를 처음 만나게 된 상황, 선정상 괴벨스와의 마찰, 그리고 두편의 전당대회 영화와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를 촬영 제작하는 과정의 에피소드들을 상세히 서술한 부분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저자는 리펜슈탈과 히틀러의 첫만남을 당시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한프슈탱글의 증언을 인용해 이렇게 묘사한다.

 

“리펜슈탈은 매우 활발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저녁식사를 마친후 괴벨스와 히틀러를 아무 어려움없이 자연스럽게 자기 스튜디오로 초대했다…리펜슈탈은 내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히틀러가 몸을 펴거나 주변을 둘러볼때마다 리펜슈탈은 그의 바로 앞에서 춤을 추었다. 정말 한여름의 세일처럼 적극적인 접근이었다.”


돋보이는 미모만큼이나 대담하고 겁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리펜슈탈은 히틀러와 만나기 전에 이미 <나의 투쟁>을 밑줄까지 쳐가면 탐독한 상태였고, 히틀러란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 설킬드는 리펜슈탈를 나치 부역자로 단죄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화적 열정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한 작가로 묘사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그녀에 죄가 있다면, 당시 상황에서 나치즘과 히틀러의 죄악을 꿰뚫어보지 못했고 ,  결정적으로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다는 점이라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리펜슈탈이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다큐멘터리를 히틀러의 강권에 의해 마지 못해 만들었으며, 감독활동기간동안 히틀러 등 나치정부 관리들과 여러 차례 충돌한 적도 많았던 상황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리펜슈탈 대표작품들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림피아>를 통해 요즘과 같은 성화 봉송이 처음 시도됐으며,  덩이안에 들어가거나  탑 위에 올라가 운동 선수들의 움직임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잡아낸 것도 리펜슈탈이었다는 사실 등이 새롭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에서 괴벨스와 리펜슈탈 간에 벌어졌던 신경전,  나치 건축가로 유명한 알베르트 슈피어와의 협력관계, 그리고 온갖 스트레스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집념과 고집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냈던 리펜슈탈의 분투 등도 생생하게 저자는 그려내고 있다. 


45년 종전 후 리펜슈탈은 전범재판정에서 나치즘의 협조자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4년간의 프랑스 교도소에 수감생활을 마친뒤 사진작가로 변신, 말년에는 아프리카 누바족에 관한 기록사진과 해저탐사사진으로 재평가받기도 했다.

상당히 방대한 분량(650쪽)과 충실한 사진자료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리펜슈탈이란 문제적 인간에 대해 속시원한 해답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그것은 사실 저자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말미에 실린 저자의 주장은 깊은 공감과 울림을 남긴다.  


“반유대주의를 담은 끔찍한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드는데 참여한 다른 감독들과 다른 배우들조차 전쟁 후에 그토록 고독하게 버려진 겆이 없는 상황에서 레니의 ‘죄’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있을까? …어쩌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확실히 말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레니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녀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 굳건한 믿음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재평가뿐이다…우리는 리펜슈탈이 자신의 예술에만 관심있었던 그저 비사회적인 예술가였다고 치부해버릴수도 있고, 예술을 의도적으로 손상시켜 야만적인 이데올로기를 미화시킨 범죄자라고 단정할 수있다. 혹은 진실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믿든 간에 사회가 리펜슈탈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을 분명하다. <의지의 승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나치현상과 나치 현상의 힘을 지금만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