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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4. 꽃과 초콜렛에 진심인 두 나라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은 꽃과 초콜렛에 진심인 나라, 아니, 미친 나라들이라는 겁니다. 물론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튜울립 때문에 버블경제와 경기침체까지 겪은 나라이고, 벨기에는 세계에서 1인당 초콜렛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나라 만의 독특한 꽃문화를 느꼈고, 벨기에에서는 초콜렛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감튀도 있고, 홍합도 있고, 와플도 있고, 치즈도 있지요^^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마침 튜울립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 암스테르담 인근 큐켄호프 공원을 찾았습니다. 제가 갔을 땐, 아직 야외엔 튜울립이 덜 피었고 실내 전시장에서 다양한 튜울립들을 만날 수있었습니다. 전 세..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3. 브뤼허의 성혈성당

'유럽북부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허는 오랫동안 저의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계기는 영화였지요. 2008년 개봉한 마틴 맥도너 감독의 에서 두 주인공 콜린 패럴과 브렌단 글리슨은 영국 대주교를 암살한 후 브뤼허로 숨어들어옵니다. 영화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던 두 사람이 결국엔 또다시 쫓고 쫓기는 처지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긴박하고 잔인한 상황과 달리 아름답고 고즈넉하기 짝이 없는 운하 도시의 풍경이 매혹적이었지요. 그때, 저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대개 북유럽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벨기에 브뤼셀에 하루 이틀 묶으며 근교 도시 브뤼허와 겐트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벨기에 여행 목적은 우선 브뤼셀 구도심 그랑 플라스와 ..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2. 벨기에 왕립미술관&안트베르펜 성모성당

벨기에도 미술을 빼놓고는 이야기 하기 어려운 국가이지요. 서양 미술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용어 '플랑드르파'로 잘 알려진 국가이니까요. 플랑드르파는 15~17세기에 오늘날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안트베르펜(영어로 앤트워프), 브뤼허, 겐트 등을 중심으로 일명 '북유럽 르네상스'를 일궈냈던 것을 화가와 작품들을 가르킵니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곳은 동방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이었습니다. 번영과 안정 속에 황금시대를 맞이한 플랑드르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화가로는 얀 판 에이크와 루벤스, 그리고 농민들의 삶을 대변한 피터르 브뤼헐(또는 브뤼겔) 부자 등이 있지요. 이밖에 네덜란드의 거장화가들을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플랑드르 화가들의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있는 곳이 바로..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1. 고흐&국립박물관&마우리츠하위스...

2023년 초봄, 오랫동안 계획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름동안 두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고색창연한 문화유적들은 물론이고 교과서와 화집에서만 보던 수많은 거장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있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 루벤스와 안토니 반다이크, 얀 판 에이크, 브뤼헐 부자,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등.... 제가 격하게 사랑하는 페르메이르 작품들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특별전 티겟이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고, 르네 마그리트 작품들은 브뤼셀 국립미술관의 해당 전시관이 업그레이드를 위해 폐쇄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아쉽기 짝이 없었지요. 하지만, 두 화가 말고도 만나야 할 화가들은 너무너무 많아서 발길이 바빴네요. 암스테르담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 대부분이 첫 일..

영화 <교섭> 계기로 되돌아본 '아프간 한국인 피랍사태'

임순례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한 영화 은 많이 아쉬웠지만,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샘물교회 신도들의 피랍사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국제부 기자였던만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죠. 피랍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온국민들이 탈레반의 인질이 됐었지요. 기자로서, 아프간으로부터 전해지는 새로운 소식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들이 기억나네요. 이 사건은 국가적으로 큰 과제와 교훈을 남겼습니다. 허술했던 외교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계기가 됐죠. 우리의 외교력은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을까요? 당시에 쓴 글, 제가 재직했던 신문의 기사 몇가지 올려봅니다. ----------------- 아프간을 잊지 말라 문화일보입력 2008-08-30 08:34 지난해 8월..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윤선도의 보길도

보길도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멀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화순-구례-고흥-벌교-보성-완도를 거쳐 마지막이 보길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길도는 심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작은 섬의 느낌이 더 강했던 듯합니다. 그 곳에 가면 아름다운 해변과 윤선도의 원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갈 수는 없는 곳,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곳으로 상상하게 되는 섬이 바로 보길도인 듯합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들었지만 보길도를 이제사 찾은 이유입니다. 보길도는 누가 뭐라해도 '윤선도의 섬'이지요. 학교에서 윤선도를 어떻게 배웠던가...떠올려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국어시간에 배운 '어부사시사'이지요. 요즘도 학교에서 '어부사시사'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비들이 한자로 시조를 지을 때, 이 분은 보통사람..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벌교 보성 고흥

오래 전부터 벌교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꼬막 때문은 아니고, 벌교를 찾는 타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소설 때문이었지요(오래전 완독을 하지 못하고 숙제처럼 미뤄뒀던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워낙 늦되는 사람이어서인지, 핑계거리를 찾고 싶은 건지, 이제야 이 소설을 읽기에 적당한 나이가 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제게 벌교는 매우 낯선 이름이었는데, 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벌교는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 이었습니다. 벌교 출신의 천연염색가 한광석 씨가 서울에서 염색전시회를 열었을 때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만들어낸 쪽빛과 함께 사투리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출판과 언론, 그리고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뿌리깊은 나무'를 펴낸 한창기 발행인의 조카인 ..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화엄사 운주사 화순

구례 화엄사와 화순 운주사를 다시 찾아가고픈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만 있다가, 2022년 4월 봄날에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이 두 곳은 제 기억 속에서 유난히 감동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 이 곳을 찾았었는지 정확한 연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엄사 각황전의 그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아름다움과 운주사의 말로는 표현할 수없는 특별한 기운을 느꼈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서 위를 올려다 봤을 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각황전의 자태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운주사 대웅전 뒤편의 산길을 올라다가 문득 뒤돌아 보니, 마치 비를 피하려는 듯 커다란 바위 밑에 오종종 서있던 석불들의 모습! 이 두 장면은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제 머리 속에 사진처..

내가 몰랐던 역사 12-바코드는 어떻게 '유통혁명'을 일으켰나

“삑~” 1974년 6월 26일 오전 8시를 조금 지난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에 있는 마시 Marsh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마트 직원 셰론 부캐넌 Sharon Buchanan이 ‘리글리스 주시 프루트 껌 Wrigley’s Juicy Fruit Gum’’ 10개들이 한 팩에 붙어있는 검은 줄무늬 스티커를 계산대 스캐너에 통과시킨 순간이었다. 한해 전 미국 슈퍼마켓특별위원회가 표준 바코드 Barcode인 세계상품코드(UPC)를 식료품업계 표준으로 승인한지 약 1년만에 드디어 매장에서 실제로 사용이 이뤄진 것이었다. 버나드 실버와 조지프 우드랜드가 바코드 개발을 시작한지 26년, 특허권을 얻은지 22년만이었다. 마시 슈퍼마켓에 울려 퍼진 ‘삑~’ 소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바코..

내가 몰랐던 역사 11-태초에 가짜뉴스가 있었다...길고 긴 그 역사

1782년 4월 22일, 프랑스 파리 외교가에 ‘서플리먼트 투 더 보스턴 인디펜던트 크로니클 Supplement to The Boston Independent Chronicle’란 신문이 뿌려졌다. 1면에 실린 기사는 가공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의 조지 3세 George III 국왕이 미국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인디언 원주민들을 내세워 양민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독립군인들이 최근 커다란 꾸러미들을 발견해 열어보니 무려 700명이 넘는 미국인 남녀와 어린이들, 심지어 아기들의 머릿가죽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기사는 보스턴에서 실제 발행되는 인디펜던트 크로니클 3월 12일자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싣는 형식으로 돼있다. 기사에 따르면, 뉴잉글랜드 독립군 소속의 새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