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책을 읽자

왜 제인 오스틴인가

bluefox61 2006. 6. 5. 20:47

"우리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오스틴이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커렌 조이 파울러의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벌이는 독서클럽의 멤버인 조슬린에게 있어 오스틴은 결혼하지 않고도 사랑과 구혼에 대한 멋진 소설을 쓴 여자다. 또 다른 멤버 버나데트에게 있어 오스틴은 희극의 천재다. 실비아의 딸이자 동성애자인 알레그라에게 오스틴의 존재는 여성들의 개인적인 삶에서 경제적인 궁핍함이 가져오는 충격에 대한 글을 쓴 여자이며, 프루디란 여자에게 있어 오스틴은 겨우 마흔한 살의 나이에 호지킨병(림프계 암)으로 죽은 여자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여섯 멤버들의 삶과 오스틴 소설 속 캐릭터 또는 오스틴 자신의 삶(독신, 병, 죽음, 또는 사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동성애자설 등)을 마치 옷감을 짜듯 정교하게 교직해나간 작품이다.



파울러의 말처럼, 정말로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오스틴 또는 오스틴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있다. 우리는 그릇된 편견을 현명함으로 극복할 줄 아는 엘리자베스(‘오만과 편견’)나, 부드러움과 포용력으로 주변사람들을 감싸안는 엘리노어 또는 자신의 열정에 모든 것을 거는 마리앤(‘센스 앤 센서빌리티’)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거나 동경한다. 실수를 통해 인간에 대해 배워나가는 엠마(‘엠마’)나, 가진 것 없고 소심하지만 사물을 꿰뚫어볼 줄 아는 현명함으로 인생의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패니(‘맨스필드 파크’)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이 지난해 새로 만들어져, 최근 국내 개봉돼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영국 영화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발랄하게 표현해냈고, 매튜 맥퍼든이 역대 다아시 중 가장 섹시한 매력을 선보여 고전에 새로운 맛을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솔직히 ‘오만과 편견’을 스크린에서 또다시 새로운 버전으로 만나게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지금까지 무려 6번째다. 콜린 퍼스를 영국 최고의 로맨틱 가이로 만들었던 95년작 BBC 드라마 시리즈 ‘오만과 편견’을 포함해 TV 드라마로 선보인 것만도 5번이나 된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미라 네어 감독이 할리우드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신부와 편견’, 21세기식 로맨틱 코미디로 완전 탈바꿈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까지 만들어졌다.

제인 오스틴이 마흔한 살의 길지 않은 생애에 남긴 장편소설 6편은 모두 영화화됐다. 그것도 각각 여러 번씩.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이안 감독, 엠마 톰슨 주연의 작품을 포함해 4번 영화화됐고, ‘엠마’는 기네스 펠트로 주연작과 에이미 해커링의 ‘클루리스’까지 합쳐서 영화로 5번, TV 드라마로 1번 만들어졌다. ‘설득’은 영화로 1번, TV 드라마로 2번 제작됐다. 오스틴 사후에 출간된 ‘맨스필드 파크’는 패트리샤 로제마 감독이 원작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오스틴의 실제 모습을 적극 투영해서 영화화했고, ‘노생거 수도원’역시 한 차례 영화화된 적이 있다. 심지어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제인 오스틴이 십대 시절 쓴 희곡 ‘찰스 그랜디슨경’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맨하탄의 제인 오스틴’을 1980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제인 오스틴인가. 70년대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영미 문예영화의 소재로 E M 포스터의 소설들(‘인도로 가는길’’전망좋은 방’’모리스’’하워드 엔드’등)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난 후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과 대중문화 간의 만남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에 불과한(또는 그렇게 보이는) 오스틴의 소설이 200여 년 뒤인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감각적인 코믹물을 선호하는 한국관객 약 100만명이  ‘오만과 편견’을 보기위해 극장을 찾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오스틴 작품에 대한 반응은 딱 둘로 나뉜다. 열렬하게 좋거나, 극렬하게 싫어하거나. 그 둘 사이의 중간은 없다. 영국 역사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월터 스콧 경은 오스틴에 대해 "일상생활의 사건과 감정을 묘사하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최고다"라고 극찬했다. 키플링은 "그녀를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또한 그녀가 만들어낸 모든 것으로 그녀를 찬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스틴보다 한 세대 늦은 여성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오스틴의 소설은 영국인 삶의 진정한 열정과 깊은 감정을 결핍하고 있다"고 깎아내렸다. 마크 트웨인은 악평에 있어서 브론테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마다 그녀의 무덤을 파내고 정강이뼈를 찾아 그것으로 그녀의 해골을 패주고 싶다. 이 세상에서 오스틴 작품이 없는 도서관은 무조건 좋은 도서관이다."

 

오스틴의 삶은 유럽 전역이 혁명의 질풍노도에 휘말려 있던 격변기와 정확하게 겹쳐진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14살 때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1817년 사망하기까지 혁명은 시대를 지배하던 정신이었다. 게다가 당시 유럽 문화계에서는 낭만주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또는 그녀의 소설)은 이 모든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혁명과 낭만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견해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비판론자들은 오스틴이 일기 속에서조차 혁명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으며 여행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를 오로지 시골 중상류층의 협소한 세계 속에만 틀어박혀 남녀의 소소한 애정사에 관심을 집중했던 작가로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했고, 당시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일말의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 매우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오스틴 소설이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인 사랑과 결혼, 부에 대한 강박, 사회계층적 추락에 대한 공포, 이성과 신중함의 미덕 등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감정의 거품을 거부하는 소설 속 캐릭터들이 19세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세계에 옮겨놓아도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시간을 초월하는 현대성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자유로운 재해석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오스틴 소설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 엠마, 패니, 엘리노어 등은 모두 좋은 남자들과 행복한 결혼을 하지만 결코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들이 남자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미모도, 돈도, 사회적 지위 덕분도 아니며 오로지 현명함과 인내심,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의 소중함을 알아볼 줄 아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유머감각과 재치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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