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비우티풀]과 스페인 경제위기

bluefox61 2012. 6. 13. 16:13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이 유로존 위기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유럽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 경제는 이미 2010년부터 추락할대로 추락한 상태입니다. 노동인구 4명 중 1명이 실업자이고, 25세 이하 청년 2명 중 1명이 현재 실업상태입니다. 정부가 지난 8일 은행구제금융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병 든 스페인 경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외신에 등장하는 무미건조한 경제수치들을 들여다보면서, 지난해 국내 개봉됐던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비우티풀'을 생각하곤합니다. 도표나 지수에서는 결코 실감할 수없는 스페인 국민들의 고통이 이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유로존 위기를 수년째 들여다봐온 탓에 무감해질때마다 저는 '비우티풀'의 그 남자 욱스발을 생각하곤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러곳에서 제2,제3의 욱스발이 거리를 헤매며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영화의 배경은 바르셀로나입니다. 가우디와 투우의 고장, 뜨거운 태양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입니다. 우디 앨런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보듯, 자유롭고 열정적인 사랑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바르셀로나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아주 먼 거리에서 카메라 프레임의 끝자락쯤에 흐릿하게 스쳐지나갈 뿐이지요.

대신 영화는 바르셀로나의 뒷골목, 지하방, 남루한 아파트 등을 비춥니다.  관광객들에겐 아름답고 이색적인 바르셀로나도 주민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나가야할 생존의 전쟁터일뿐이지요. 사실 영화의 배경이 바르셀로나든 , 스페인의 다른 도시이든 상관없습니다. 어디가됐든, 가진것없고 배운 것없으며 일자리도 없는 막노동꾼에게 힘들고 냉혹한 곳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중병든 중년의 가난한 아버지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에게 쏟아부은 깊은 사랑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냐리투 감독은 욱스발이란 인간을 통해 오늘날 스페인이 처한 경제위기, 사회 하층계급이 겪는 고통 등을 지켜보기 힘들만큼 생생히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욱스발은 일종의 인력브로커입니다.그는 죽음을 미리 볼 수있는 특별한 초능력을 지니고 있지요. 그러니까 그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있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가 사는 엘 라발 지구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지역입니다. 그는 아프리카계 밀입국자들에게 짝퉁가방 파는 일을 알선해주거나 짝퉁가방 공장을 운영하는 중국인 사장의 뇌물 상납을 돕는 일을 합니다. 이혼남인 그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전처는 알콜중독에 자신의 형과 놀아나는 문란한 여자이지요. 온갖 어려움에도 아이들을 돌봐온 욱스발은 자신이 말기암 환자이며, 3개월 밖에 생명이 남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는 치료도 고사하고 아직 어린 두 자녀를 위해 최후까지 자신만의 투쟁을 벌입니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유독 많습니다. 그 중하나는 바르셀로나 외곽의 공동묘지 장면입니다. 그는 공동묘지 관리자로부터 아버지 관이 들어가있는 납골당 관리비를 내지 못하면 관을 빼라가는 요구를 받습니다.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돈을 내지못한 가족들이 관을 빼간 뒤 빈 구멍으로만 남은 납골당 칸들을 비춥니다.

 

 

(*영화 스틸은 아니고 바르셀로나의 한 공공묘지 사진입니다.
납골당 형태이지만, 납골만 하는게 아니라 관전체를 이곳에 매장하는 방식인 듯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역시 불법이민자들의 집단몰살입니다. 욱스발은 중국인 불법이민자 수십명을 창문도 제대로 없는 지하방에 숨겨놓고 밖에서 문을 잠근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겨울 그들이 추울까봐 중고 가스난로를 달아줄 정도로 그는 나름대로 불법이민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당분간 그들을 숨겨놓은 후에는 일자리를 소개해줄 계획이었지요. 하지만, 다음날 그는 지하방문을 열어보고 경악합니다. 가스 누출로 인해 수십명이 중독사한 것입니다. 좁은 지하실에 수십명이 죽어 널부러져 있는 비주얼은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도 불법이민자들이 컨테이너에 숨어 들어오려다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기는 하지만, 영화 속 이 장면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더욱 잔혹한 것은 , 경찰에 들킬 것을 두려워한 욱스발과 인신매매 범죄조직이 그 많은 시신들을 싹 쓸어가 바다에서 유기해버린다는 점입니다. 며칠 후 바닷 물 위에 시신들이 떠올라 해변으로 밀려올라오고, 그 위로 태양은 잔인할만큼 찬란하게 비춥니다. 아무리 범죄에 한발 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 심성은 착한 남자 욱스발을 연기하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이 영화에서 펼쳐보이는 황망하고 슬픔에 찬 연기는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와 욱스발의 처참한 상황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 자신도 일자리가 없는 욱스발이 불법이민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욱스발은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평소 친하게 지냈던 아프리카 불법이민자 여성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합니다.여자는 욱스발처럼 착하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하지만 그녀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푼의 돈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욱스발은 죽기전,아이들을 돌보는데 써달라며 그녀에게 아끼고 아낀 돈을 건네줍니다. 영화는 여자가 아이들은 내버려둔채 돈만 챙겨가지고 떠났는지, 아니면 다시 돌아왔는지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또다른 가난한 사람을 배신하고 등쳐먹어야 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상황을, 비록 영화 속에서나마 지켜보기란 쉽지않은 일입니다.

그녀는 돌아왔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관객일지라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여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는 스페인과 그리스를 지켜보며 지금 이 순간 절망 속에 뒷골목을 헤매고 다닐 수많은 욱스발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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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경제, 왜 이 모양이 됐나>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7일 스페인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3단계 강등했다. 피치는 스페인 은행권에 구제금융을 주는 게 스페인의 누적 국가부채를 급속도로 증대시킨다며 총공공부채 비율이 2015년 국내총생산(GDP)의 95%로 최고조에 달할것이라고 경고했다.피치는 스페인 정부의 차입 비용 증가가 은행 부문에 대한 구제금융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할 것이라면서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이 급추락하고 있는 핵심이유는 바로 파산위기에 처한 금융을 구하는데 필요한 자금규모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때문이다. 당초 예상 비용은 300억유로 정도였다. 최근 스페인 재무부가  "400억유로면 위기를 해소할 수있다"고 밝히면서 액수는 늘어났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대 1000억유로는 쏟아부어야 위기국면을 넘길 수있다는 계산서를 내놓고 있다. 피치 역시 7일 성명에서  "스페인 은행 부문의 구조조정과 재자본화에 드는 비용이 현 시점에서 600억유로(750억달러)로 추산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1000억유로까지 치솟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 은행들이 이처럼 심각한 부실상태에 놓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입후 값싼 해외자금이 밀려들어오자 호황의 단물에 취해 무절제한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저금리 자금은 건설시장의 버블을 만들어냈으며, 2004∼2008년 주택가격이 무려 44%나 급등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 과정에서 '카하(caja)'로 불리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시장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늘어나는 세수를 챙기는데 급급해 적절한 규제책을 세우지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 저축은행들은 2003~2007년 해마다 부동산 대출을 30%씩 늘렸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수주를 받는 지역 부동산 개발업체에도 거액을 대출해 줬다. 지방정부 역시 지역기반의 저축은행과 결탁해 온작 특혜를 부여해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지방정부와의  갈등 및 경쟁 구도의 뿌리가 깊은 스페인의 특성상 중앙정부의 행정력과 규제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스페인 경제의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멈춘 것은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부터이다. 부동산버블이 꺼지면서 주택가가 반토막이 났고, 실업률은 25% 수준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뒤늦게 지방재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부실화된 저축은행 7개를 통합한 방키아를 출범시키는 등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금융위기는 해소되기는 커녕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11일 국제통화기금(IMF)는 스페인 금융기관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발표한다. 로이터통신은 7일 IMF가 스페인 은행 전체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규모로 약 900억유로를 제시할 듯하다고 보도했다. IMF 보고서에서 스페인의 현재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날 경우,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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