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이슬람 파시스트 발언 파장

bluefox61 2006. 8. 18. 14:05

9·11테러 5주년을 앞두고 일어난 대규모 여객기 테러음모 사건의 충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슬람을 향한 강도높은 비판 발언이 심상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영국 경찰이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하자마자,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가 이슬람 파시스트들과 전쟁 중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상기시켜주고 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의지를 새삼 강조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사용한 ‘이슬람 파시스트’란 표현이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은 ‘일부 이슬람 과격분자’ 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란 표현을 쓴 적이 있어도 이슬람과 파시스트란 두 단어를 붙여서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파시스트’하면 당장 제2차세계대전때 나치의 인류범죄적 만행 악몽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슬람 파시스트’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미국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이슬람 신자들을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집단으로 매도할 우려가 있는 것이며, 대통령의 이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적’과 ‘동지’를 가르는 사고방식이 오히려 이슬람권의 극단화를 부채질하고 테러와의 전쟁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이슬람권에서도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이슬람단체인 미-이슬람관계위원회의 니하드 아와드 이사는 “우리는 이것이 사려 깊지 못한 용어이며, 이슬람교 또는 이슬람교도들을 파시즘과 연계시키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무슬림공공문제위원회 역시 “항공기 폭파 위협을 특정 개인 그룹의 책임으로 한정시키는 대신 이슬람교를 독재와 파시즘에 결부시키는 발상”이라며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는 모든 이슬람교도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낸 것”이라고 맹비판을 퍼부었다. 그만큼 ‘파시스트’란 단어에 대한 알레르기가 심했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지도자의 발언은 그의 정책과 철학을 반영하는 거울이란 점에서 미국 언론들은 부시대통령의 ‘이슬람 파시스트’발언을 그의 대 이슬람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9·11테러후 지난 5년동안 부시 행정부가 벌인 강도 높은 ‘테러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보다 안전해지기는커녕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지도자인 부시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발언이 다른 국가지도자들의 사고방식과 행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까지 국제여론 따위는 무시하고 ‘내식대로’ 발언과 행태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부시 대통령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특히 부시 대통령과 ‘가족’같은 관계를 자랑해온 고이즈미 총리의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강행에서 ‘부시 대통령 따라하기’의 흔적을 느꼈다면 지나친 것일까.

‘타인에 대한 이해노력’과 ‘대화’는 없고 ‘극단’만 난무하는 세태가 지구촌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