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유럽 각국의 저마다 다른 계산 속으로 인해 대 러시아 제재 계획이 벌써부터 난항에 부딛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고있어 과연 국면전환을 이뤄낼 수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러시아 외교적 압박은 '고립화' 작전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외교 압박 카드는 오는 6월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회의 불참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무역제재와 금융제재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은 이에 호응해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장관 긴급회의에서 지난 2007년부터 러시아와 진행해오던 비자면제 협상의 전면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이 과연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경제재제에 적극 동참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로이터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EU 외교장관회의에서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들은 러시아에 대한 즉각적인 엠바고(수출입금지)를 주장한 반면 서유럽 회원국들은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서유럽 각국이 크림반도에 최소 6000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한 러시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는 높이면서도 , 정작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러시아와 정면충돌하기는 꺼리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영국이다. 3일 텔레그래프는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러시아 경제재재 반대입장을 정했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이날 긴급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총리 관저에 들어가는 한 관리의 손에 들려있던 문서를 망원렌즈로 촬영한 사진의 내용을 분석해보니 이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캐머런 총리는 러시아를 비판하면서 오는 7일(한국시간 8일) 개막하는 소치동계 패럴림픽 불참을 통보한 바있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역시 G8 정상회의 보이콧 입장을 나타냈을 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8년 조지아와 러시아 간의 전쟁발발당시, EU 순회의장국이었던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조지아를 침공한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6개항으로 이뤄진 평화중재안을 이끌어냈던 것과는 딴판이다.
반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와 서방 간의 유일한 대화채널이 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거의 매일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푸틴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갖고 있으며, 2일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이끄는 진상조사기구 및 연락기구를 설치하기로 푸틴과 합의하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3일에는 대변인을 통해 " 아직은 평화적 해결방안이 있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경제적,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우선 독일은 수입 천연가스의 약 40%를 러시아로부터 가져오고 있다. 원유 수입량의 약 35%가 러시아 산이다. 서유럽 국가들 중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다. 최근 독일은 러시아와 가스관 및 원유공급 파이프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해왔다. 게다가 독일이 러시아에 투자한 금액만 최소 220억 달러( 약 23조 5000억 원)이 넘고, 독일 투자자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기업이 6600개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독일 입장에서는 지정학적으로 '제2의 냉전'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최악의 국면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경제재재가 현실화됐을 때 러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부담은 만만치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유럽 각국은 일단 비자면제 협상 중단으로 러시아 부호 계층에 피해를 줌으로써 , 푸틴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이 효과를 나타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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