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재평가하는 영국

bluefox61 2014. 3. 20. 05:25

영국 정부가 ‘정보사회’의 핵심으로 꼽히는 빅데이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4200만 파운드(약 747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19일 하원 연설에서 “빅데이터 이용과 알고리즘 연구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며 “빅데이터를 통해 제조업과 마케팅의 발전,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 제공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4200만 파운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은 영국 정부가 빅데이터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독사과를 먹고 자살한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1912∼1954)을 기념하기 위해 ‘앨런 튜링 연구소’란 이름을 택했다는 점에서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오즈번 장관은 “튜링은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그 어떤 인물보다도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의해 성적으로 처형당했다”며 “사후에라도 그의 명예를 회복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로 유명하다. 1945년 초보적 형태의 컴퓨터인 튜링머신을 고안해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수학 및 컴퓨터 분야의 최고 영예상 중 하나인 ‘튜링 상’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학자로서 승승장구하는 듯했던 튜링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 것은 1952년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했던 19세 남성 동성애자 때문이었다. 이 남성이 공범과 함께 튜링의 집을 털어간 사건이 계기가 돼 튜링이 동성애자란 사실이 경찰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법에 따르면 동성애는 중죄였다. 결국 1953년 튜링은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고, 그로부터 1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그의 시신 옆에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한 장면처럼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튜링이 청산가리를 직접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설에 의하면 튜링을 존경하던 스티브 잡스가 한 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을 자신의 회사인 애플 심벌로 택했다고 한다.

튜링은 사후 59년 만인 지난해 12월 24일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사면됐다. BBC 등은 정부가 역점 사업인 빅데이터 연구소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다시 한번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