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러시아는 지금 영화 '리바이어던' 논쟁 중

bluefox61 2015. 1. 29. 11:00

"러시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낸 시의적절한 영화다." " 러시아를 추악한 2류 국가로 묘사한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무명용사 묘지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
 

러시아 정치, 종교, 문화계가 영화 한 편을 놓고 둘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한 용기있는 영화란 극찬이 쏟아지는데 반해, 또 한쪽에서는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서방의 공격에 부화뇌동했다는 극렬한 비난이 나오고 있다.
 

문화부가 감독에게 일부 장면의 삭제를 요구했다는 설, 극장업자들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개봉을 꺼리고 있다는 설 등 문제의 영화를 둘러싼 소문도 무성하다. 푸틴 대통령이 대변인을 통해 "반(反)러시아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놓은 후 오는 2월 5일 개봉무산설은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이지만, 유가급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서방의 제재로 가뜩이나 뒤숭숭한 러시아 사회에 영화 한 편이 심상치않은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 ‘리바이어던’.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영국 런던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미국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의 외국어영화 부문에 후보작으로 오른 ‘리바이어던’은 오는 2월 22일 시상식에서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러시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황금독수리영화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극본상 등 4개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바이어던’은 러시아 북부의 한 해안마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40대 남성 니콜라이가 자신의 땅을 노리는 부패한 시장 바딤에게 맞서 싸우다가 처절하게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괴수’를 의미하는 영화제목 ‘리바이어던’은 부패하고 사악한 러시아의 권력집단, 더 나아가서는 모순으로 가득찬 오늘날의 러시아 자체를 의미한다. 주인공이 법정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판결문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보드카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희망없이 살아가는 시골마을 주민들의 일상부터 정치,법, 종교 간의 결탁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즈비아긴체프는 지난 2003년 데뷔작 ‘귀환’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제2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란 극찬을 받은 감독이다. 2007년 ‘추방’, 2011년 ‘엘레나’에 이어 ‘리바이어던’이 그의 네번째 작품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 평범한 미국 남성이 땅 문제로 시 정부와 싸우다 자살한 사건에서 영화의 모티프를 얻었다"며 "미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즉, 특정 시대 또는 특정 정권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즈비아긴체프 감독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비판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감독이 영화 속에서 푸틴 체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강경파들은  ‘리바이어던’의 제작비 일부를 지원한 문화부까지 비난하고 있다.국민세금으로 반정부 영화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사실,아카데미 영화상 외국어 영화 부문 후보작으로 ‘리바이어던’을 추천한 것도 문화부였다.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게 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리바이어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면서, 지난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비속어금지법’에 따라 즈비아긴체프 감독에게 비속어 장면을 편집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화부는 ‘리바이어던’ 논란 때문에 최근 영화지원 관련 규정까지 바꿨다. 


반면, 러시아 정교회 내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안드레이 쿠라예프 신부는 지난 21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리바이어던’으로 비난받고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며 "푸쉬킨,그로보예도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도 같은 이유로 비난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최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뢰밭에서 사는 것과 같다"며 "시스템(기성체제)의 가치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직업적 미래,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반정부 성향의 예술활동을 억압하려는 것이 목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비속어 금지법’에 대해선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