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할리우드는 어떻게 여성대통령, 흑인대통령을 만들어냈는가

bluefox61 2008. 2. 18. 20:40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이 쏠려있는 쪽은 민주당 예비선거. 당내에 탄탄한 기반을 갖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흑인 JFK’를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간의 각축이 워낙 뜨거운 탓도 있지만, 어느 쪽이 예비선거의 승자가 되든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또는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불과 십여년전만해도 꿈꾸기 어려웠던 일이 이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여성대통령과 흑인 대통령이 활약해왔다.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등장한 영화는 1964년 <나의 대통령을 위한 키스(Kisses for My President)>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영화 의 주인공은 레슬리 맥클라우드(폴리 버겐 扮).그는 여성유권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뜨겁게 확산되던 여권운동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정작 미국 최초 여성대통령의 당당한 활약을 그리기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퍼스트 허즈번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맥클라우드의 남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목 자체도 여주인공에게 진정한 ‘대통령’은 남편이며 그에게 키스를 바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2년 로드 루리 감독의 영화 <컨텐더>는 미국 최초 여성부통령의 탄생과정을 정면에서 다룬 정치드라마다. 

주인공 레이니 핸슨(조앤 앨런) 상원의원은 부통령 지명을 받지만,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그를 탐탁치않게 여기는 극단적 보수성향의 청문회 의장이 핸슨의 과거 대학시절 섹스파티 및 불륜관계를 폭로하면서 몰아부치고, 그 결과 핸슨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잭슨대통령(제프 브리지스) 정권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부패한 정치인과 강직한 신념 및 의리의 소유자인 여성 정치인 핸슨 간의 대결을 긴박감있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위기에 처한 핸슨이 결국엔 노련한 정치적 테크닉과 감각을 가진 잭슨대통령에 의해 구원받아 부통령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돼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대통령은 영화 스크린을 거쳐 드디어 안방극장에도 등장하게 된다. 2005년 ABC 네트워크를 통해 여성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정치드라마 시리즈 <커맨더 인 치프>가 방송되기 시작한 것. 영화 속 여성대통령과 연속극 속 여성대통령이 갖는 의미는 차별화된다. 영화가 한정된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연속극은 매주마다 전국 수천만명 아니 전세계 수억명의 시청자들을 향해 여성 대통령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컨텐더>의 로드 루리 감독이 연출을 맡은 <커맨더 인 치프>의 주인공은 맥킨지 앨런(지나 데이비스). 부통령으로 권력승계 순위 2위였던 그는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자 직위를 이어받게 된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커맨더 인 치프>는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으나, 결국엔 장수드라마로 자리잡지 못하고 종영하게 된다. 7번째 시리즈에서 로드 루리가 방송사와의 마찰로 떠난 이후 등으로 유명한 스티븐 보치코가 메가폰을 이어받으면서 주인공 앨런 대통령의 캐릭터가 변질됐던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가적으로 큰 일이 벌어질때마다 동요하거나 ,남편 또는 남자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에 시청자들, 특히 여성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루리 감독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11일자 인터뷰에서 “내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잘모르겠지만 ,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보치코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란 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 속의 여성대통령은 <24>를 통해 또다시 시청자들을 찾아가게 될 예정이다. 지난 2001년부터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24>는 곧 앨리슨 테일러(체리 존슨)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당초 1월 13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가 작가조합 파업으로 방송이 미뤄진 7번째 시리즈에서 테일러는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다.

   

<24>는 드라마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큰 작품이다. 

시리즈 초반에 상원의원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이비드 팔머(데니스 체이스버튼) 캐릭터는 현실세계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매우 흡사하다. 우선 흑인인데다가, 지적이며 부드러운 성격을 지녔고, 가정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세련된 연설능력과 듣기 좋은 바리톤 음성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2001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 기획자들이 처음부터 오바마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은 적지만, 결과적으로 가상세계와 현실이 기막히게 들어맞게 된 셈이다. 드라마 속에서 팔머 대통령은 결국 암살당하고, 그의 동생인 웨인 팔머(D B 우드사이드)가 두번째 흑인 대통령이 된다.

  

할리우드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등장한 영화는 1972년작 <더 맨>이었다. 어빙 월레스의 소설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제임스 얼 존스(더글라스 딜먼)는 대통령과 하원의장이 졸지에 사고로 동시 사망하고 부통령까지 중병에 들면서 얼떨결에 흑인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이 된 후 인종적 공격을 집중받으면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

  

뉴스위크의 지적처럼 “미국의 대중문화는 현실에 앞서 일반국민들을 사회적으로 선행학습시키고 까다로운 사회문제에 대한 수용을 돕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물론 현실 정치는 스크린 속의 정치와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현실의 정치와 선거는 영화보다 더 재밌다.


한때 할리우드의 ‘판타지’로 여겨졌던 첫 여성대통령, 첫 흑인대통령이 과연 현실화될 수있을까. 전세계인들이 영화,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올해 미국 대선의 역사적인 결과는 오는 11월 4일 판가름나게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