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가 있다. <티켓>은 <나막신>으로 국내에 잘알려진 이탈리아 거장 감독 에르마노 올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가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세사람이 각각 카메라를 들고 이탈리아 로마행 유럽 횡단기차에 올라탔다. 이들은 1등칸부터 3등칸에 이르기까지, 기차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면서 여러 인생을 이야기한다.
기차란 디지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묘하게도 아직까지 인간적인 온기가 남아있는 아날로그의 공간이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부딛히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올미감독은 손자의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1등칸에 올라탄 노신사의 마음속 여행을 뒤좇는다. 그는 막 헤어진 여성의 친절과 따뜻함, 사소한 표정과 제스처를 반복적으로 기억해 내며 이메일 편지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인간의 뿌리깊은 욕망의 초상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나타내온 거장답게 올미감독은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이제는 젊음으로부터 비켜앉은 한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의 잔잔한 설레임을 잡아내고 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키아로스타미의 2등칸을 무대로 하고 있다. 뚱뚱한 중년여성이 자원봉사자인 필리포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매사에 불만투성이인 성질고약한 여자는 청년을 사사건건 괴롭히다가, 결국에는 버림받고 2등칸에 홀로 남게된다.
코믹하면서도 신랄한 사회풍자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은 역시 켄 로치의 세번째 에피소드이다. 떠들썩한 3등석 기차간. 10대 후반의 영국 소년 3명은 유럽 챔피언스 리그 셀틱과 AS로마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가는 중이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얻은 로마행 기차티켓과 챔피언스 리그 입장권을 산 3명은 같은 칸에 동승한 알바니아 난민 소년과 친해진다. 소년은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 누나, 동생들과 함께 로마행 중이다. 하지만, 세명 중 한 명이 기차티켓을 잃어버리자 이들은 알바니아 소년이 티켓을 훔쳐갔다고 의심하게 된다. 기차티켓 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있는 자와 없는 자, 강국과 약소국 간의 갈등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로치감독의 솜씨가 빛난다.
영화는 세개의 서로다른 이야기로 구성돼있지만, 마치 여러칸으로 이뤄진 하나의 기차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편의 장편영화로서 손색없는 감동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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