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유혈의 땅 발칸..그리고 ‘그르바비차’

bluefox61 2011. 5. 25. 21:13


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반인류범죄를 저질렀던 보스니아 내전의 학살자 라도반 카라지치가 

2008년 도피 13년만에 드디어 체포됐다. 

구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지도자였던 그는 

1992~95년 내전당시 이슬람계인 보스니아계 및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보스니아 내전은 세르비아계 군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 

인종을 달리하는 주민들간의 증오범죄로 20세기말 인류역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전쟁이었다.

이슬람계 주민 8000여명을 한자리에서 학살한 스레브레니차 사건을 비롯해 ,

이슬람 여성들을 잡아다가 강간해 아기를 낳게해 혈통을 ‘정화’하려했던 시도는 

나치의 만행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보스니아 주민들에게 내전은 아직도 떠올리기조차 힘든 악몽이다.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지금도 살해당했던 주민들의 유골이 발견되고 있으며, 

세르비아계 군인들로부터 강간당한 보스니아 여성들이 낳은 아기들은 

사춘기인 십대 중반의 나이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06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그르바비차>가 공개됐을 당시, 

전세계는 보스니아내전의 참혹상에 새삼 할말을 잃고 말았었다.

영화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는 12세난 소녀 사라가 

자신이 전쟁영웅의 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의 강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르바비차는 사라예보와 접해있는 도시로, 세르비아군은 96년 3월까지

이곳을 점령한채 이른바 고문, 강간캠프를 세워 수만명을 살해하고 강간했다.

세르비아군의 강간은 단순히 욕망을 채우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보스니아 여성에게 세르비아 아이를 낳게 만들려는 인종청소 차원의 치밀한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처럼 비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증오 등의 감정분출을 자제하고 

매우 차분한 시선으로 전개된다.’짐승의 딸‘을 사랑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어머니란 존재가 있기에, 세상엔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만든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베를린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 트로피를 손에 들고 이렇게 수상소감을 말했었다.

“보스니아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전범인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는 여전히 유럽 모처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전쟁당시 보스니아 여성 2만명이 조직적으로 강간당했으며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이며, 

아무도 그들을 잡는데 관심이 없다. 내 영화가 보스니아에 대한 당신들의 시각을 바꿔놓길 희망한다.”


유고 내전의 3대 전범인 밀로셰비치, 카라지치, 믈라디치 3인방 중 이제 카라지치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밀로셰비치는 전범재판을 기다리던 중 2006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자연사‘했었다. 

믈라디치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카라지치의 재판으로 세상은 과연 정의를 세울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내전으로 아버지를, 자식을, 어머니를 잃은 보스니아인들의 가슴속에 

맺힌 슬픔이 과연 가셔질 수 있을까.... 


발칸의 도살자가 이번에는 정말 처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최악의 조직적 인종학살 고통을 겪었던 보스니아(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레브레니차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특급전범’ 라트코 믈라디치(69)의 체포에 큰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16년 만에 드디어 괴물이 경찰에 붙잡히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믈라디치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못할 것”이란 반응도 적지 않다. 


스레브레니차 주민인 무함마드 두라크비치는 26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구유고연방전범재판소(ICTY)의 재판과정이 너무나 길다”면서 “이변이 없는 한 이번에도 희생자 가족들이 정의구현을 목격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 일부가 이처럼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ICTY가 보스니아내전(1992∼1995년)의 3대 도살자 중 한 명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및 신유고연방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6년이나 끄는 바람에 처벌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체포돼 네덜란드 헤이그 구치소에 수감됐던 그는 2006년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 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66) 역시 지난 2008년 체포된 후 헤이그 구치소에 수감돼 있지만 재판이 열린 것은 현재까지 손에 꼽을 정도이다. 1993년 설립된 ICTY는 그동안 161명의 전범을 기소해 약 40명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냈으나, 핵심 중의 핵심인 밀로셰비치의 단죄에 실패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카라지치에 이어 믈라디치까지 세르비아에 은둔하고 있다가 체포되면서, 세르비아가 전범들을 장기간 비호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또다시 힘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파키스탄 군부의 오사마 빈 라덴 비호설과 비교하면서, 세르비아를 ‘발칸판 파키스탄’으로까지 거론하고 있다. 카라지치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가명을 사용해 대체의학치료사로 버젓이 활동하다 도피 13년 만에 체포됐고, 믈라디치는 베오그라드로부터 불과 100㎞도 채 떨어지지 않은 라자레보 마을에 있는 사촌집에서 밀로라드코마디치란 가명으로 거주해오다 26일 오전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3인 대통령위원회의 크로아티아계 위원은 “이번 검거로 세르비아 당국이 믈라디치 소재를 항상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세르비아의 안보분석가인 알렉산데르 라디치 역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까지는 믈라디치가 세르비아 정부의 보호를 받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카라지치가 체포됐던 2008년, 세르비아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의 정부가 총선에서 패배하고 보리스 타디치 현 대통령이 이끄는 친유럽연합(EU)파가 승리했다. 그러나 ICTY 수석검사인 벨기에인 세르주 브라메르츠는 5월 중순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르비아 정부가 전범체포에 여전히 매우 비협조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믈라디치는 내전 당시 스레브레니차 이슬람계 주민 약 8000명 학살 등을 주도한 혐의로 1995년 ICTY에 기소됐다.


한편 5월 29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보스니아내전(1992~95년) 특급전범 라트코 믈라디치(66) 체포에 항의하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약 1만명의 초강경 세르비아 민족주의 지지자들은 29일 베오그라드 중심가에서 믈라디치 석방,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 및 내각 총사퇴 등을 요구하면서 경찰서와 상점에 돌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전부터 전국에서 버스를 나눠타고 몰려든 시위대와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10여명이 부상당하고 100여명이 체포됐다고 로이터통신, BBC 등이 보도했다. 

시위자 상당수는 구 보스니아(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군인 출신들로 추정된다. 믈라디치는 내전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군총사령관으로, 사라예보를 43개월 동안 점령하면서 인종청소와 조직적 성폭행을 통한 ‘인종정화’ 만행을 주도했으며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이슬람계 주민 8000여명의 학살을 명령했다. 그는 1995년 구유고연방전범재판소(ICTY)에 의해 기소된 후 16년간 도피생활을 해오다가 세르비아 라자레보에서 26일 보안대에 전격 체포됐다. 


시위대는 믈라디치를 비롯한 전범들의 대형사진을 들고 베오그라드 거리를 행진하면서 “믈라디치는 세르비아의 영웅”, “스레브레니차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허구”, “헤이그(ICTY 소재지) 협력은 반역” 등 구호를 외쳤다. 

‘세르비아 급진당’의 리디야 부키체비치 당수는 연단에 올라 “정부가 친서방정책을 내세워 세르비아 국가의 모든 이익을 배신했다”면서 “세르비아에 치욕을 안긴 정부는 마땅히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믈라디치와 연관된 보스니아 내 마을 등에는 그를 지지하는 세르비아계 순례객들의 방문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