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76)감독의 체포가 영화계는 물론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32년 전 미국에서 13세 소녀모델을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26일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체포된 폴란스키는 29일 현지 법원에 석방을 요청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형사법원에 따르면 석방여부에 대한 결정은 내주중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형사법원은 또 미국 사법당국이 스위스 법무부에 폴란스키 감독 체포를 요청한 것이 합법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영화계는 그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위스 정부에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30일 현재까지 약 140명의 저명한 감독, 제작자, 영화배우 등이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디 앨런, 페드로 알모도바르, 마틴 스코세즈, 데이비드 린치, 빔 벤더스,왕가위,모니카 벨루치, 틸다 스윈턴, 하베이 와인스타인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인이 서명 명단에 포함돼있다. 제작자인 와인스타인은 CNN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폴란스키를 돕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영화감독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스키가 국적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베르나르 쿠시네르 외무장관, 프레데릭 미테랑 외무장관 등이 스위스 정부에 적극적인 석방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프랑스, 스위스 등 관련국간에 외교적인 마찰까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폴란스키에 따라 갑작스런 체포를 둘러싼 의문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폴란스키에 대한 체포 집행이 이뤄졌느냐하는 점이다. 또한가지는 폴란스키가 저지른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확연하게 다른 시각이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폴란스키의 범죄를 이제는 사면해줘야하는가란 의문도 연관돼있다. 유럽 문화계는 사면쪽에 손을 들어주는 반면, 미국 여론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범죄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뤄져야하는 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해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영화계에서는 폴란스키가 지난 30여년동안 스위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스위스에 집까지 갖고 있을 정도란 점에서 스위스 경찰당국의 이번 체포 결정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법당국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폴란스키의 움직임을 주시해왔으며 지난 2007년에도 이스라엘에서 그를 체포할 기회가 있었다가 놓쳤다”고 밝혔다. 즉, 폴란스키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이번 체포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가능했다는 이야기이다.
폴란스키를 이제는 법적으로 자유롭게 해줘야하는가 여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성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유럽쪽에서는 성폭행과 성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폴란스키가 13세 소녀와 성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이것에 대해서는 폴란스키 자신도 인정) 성폭행의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행위를 가지고 30년넘게 그에게 법적 굴레를 씌우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게다가 현재 40대 중반 나이가 된 문제의 소녀 사만사 가이머가 폴란스키에 대한 용서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는 점도 유럽 예술계의 폴란스키 동정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가이머는 수년전 공개기자회견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이 사건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으며 이제는 나 스스로 해방되고 싶다.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유럽보다 보수적인 미국의 여론은 좀 다르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을 거의 정신병자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데다가 페도필(아동성도착증)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란스키가 아무리 저명한 예술가라 할지라도, 법적 심판대에 서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폴란스키가 도망만 다닐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법정에 당당하게 출두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편이 좋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0여년전과 달리 현재 상황에서 폴란스키가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으로만 볼 수없다는 이야기이다.
폴란스키는 유난히 부침이 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1933년 8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3살되던 해에 부모의 고향인 폴란스 크라코프로 이주한 폴란스키는 1940년 폴란드가 독일 나치군에 점령당하면서 유대인 게토에서 생활해야했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 폴란스키의 아버지는 아들을 빼돌리는데 성공했고, 전쟁기간동안 그는 가족과 헤어져 한 가톨릭 가정에서 생활해야했다. 종전후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왔지만 그의 어머니는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이 같은 어린시절의 상처 때문에 폴란스키는 청소년기에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환상의 세계에 푹빠졌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계기로 크라코프 극단 및 영화학교에 진학해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1954년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어떤 세대’를 통해 배우로 먼저 스크린 신고를 한 그는 1962년 장편데뷔작 <물 속의 칼>에서 탁월한 심리묘사 솜씨를 선보여 폴란드는 물론 전 유럽 영화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그는 1968년 <로즈마리의 아기>로 평단을 깜짝놀래키며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승승장구하는 듯했던 그의 삶은 1969년 큰 반전을 맞게 된다. 영화배우 출신의 아내 샤론테이트가 자택에서 찰스 맨슨 일당에 의해 잔혹하게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 사건 당시 촬영지에 있었던 그는 아내가 수십 차례 칼에 찔려 살해됐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고, 끔찍한 사건현장을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1974년 <차이나타운>, 1976년 <하숙인> 등 문제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혀나가게 된다.
1977년 폴란스키는 또한차례 고비를 겪게 된다. 이른바 ‘미성년 성추행’사건이다.
사건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 벌어졌다. 그는 니콜슨이 촬영 때문에 비운 집에 사만사 가이머란 13살짜리 소녀를 불렀다. 이유는 영화출연 가능성을 보기 위해 사진촬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훗날 수사 결과에 따르면 폴란스키는 13살 소녀에게 술과 약물을 먹였던 것으로 밝혀졌고, 성관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가이머 측의 고소에 따라 폴란스키를 체포했으며 미성년자에게 술과 마약을 제공한 혐의 및 강간행위 등 6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폴란스키는 42일간 구치소에 수감돼 수사를 받다가, 가석방돼 재판출소를 기다리고 있던 중 1978년 경찰의 눈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도피했다.
이후 31년동안 폴란스키는 단 한차례도 미국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심지어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을때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미국과 범죄자 인도조약을 맺고 있는 영국도 방문한 적이 없다. 대신 그는 프랑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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