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 이야기

드팔마 신작 ‘블랙다알리아’..영화, 소설, 그리고 실제사건

bluefox61 2006. 7. 26. 00:13

오는8월 30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리는 제 63회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미국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 <블랙 다알리아>가 선정됐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25일 기자회견에서 개막작을 공개하고, “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드팔마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제를 열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국내외에 많은 팬들을 갖고있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 베니스 영화제의 인연은 이번이 다섯번째. 드 팔마는 지난 75년 <자매들>로 베니스 영화제에 처음 진출한 이래 <블로 아웃><레이징 케인><언터처블스> 등의 작품으로 베니스를 찾은 경력이 있다.

‘LA 컨피덴셜’의 원작자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범죄소설가 제임스 엘로이(58)의 87년작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블랙 다알리아>는 1947년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두 명의 경찰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비밀을 캐나가면서 거대한 부패와 욕망의 실체와 부딪히는 과정을 다룬  작품. 소설과 영화는 47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실제로 발생했으나 아직까지도 미궁에 빠져있는 여배우 살인사건을 소재로 해 그동안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다.

조시 하트넷과 에론 에크하트가 경찰 역할을 맡았고, 힐러리 스웽크는 극중에서 하트넷과 열렬한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살인사건과 연루된 비밀을 감춘 여성인 매들린으로 등장한다. 스칼렛 요한슨은 갱단두목의 애인이었다가 두 경찰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케이 레이크 역으로 출연한다. ‘블랙 다알리아’란 별명으로 불리며 성공을 꿈꾸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여배우 지망생 엘리자베스 쇼트역은  미아 커쉬너가 맡았다.

 ‘블랙 다알리아’는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인 동시에 경쟁부문에도 선정돼 다른 작품들과 함께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됐다.


◆ ‘블랙 다알리아’…실제, 소설 그리고 영화  

 

1947년 1월 15일,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터 곁을 지나가던 여성이 잡초더미 사이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물건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위해 가까이 다가갔던 여성은 질겁했다. 마치 마네킹의 상반신 토르소처럼 보였던 물건이 사실은 한 여성의 두동강이 난 시신이었던 것이다. 사체는 누군가의 노련한 칼솜씨로 잘려 있었고, 몸안은 자궁과 내장이 적출돼 사실상 비어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입술이 양귀까지 찢겨진 바람에 마치 서커스단의 피에로처럼 죽어서도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쇼트(사진). 나이는 22살. 18살 때 가족과 함께 메사추세츠 메드포드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가출로 불우해진 가정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여배우로 성공하겠다는 꿈많은 아가씨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던 모양이다. 18살때부터 죽기전까지 약 4년동안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시카고, 보스톤 등등을 전전했던 그녀는 결국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해 남자들에게 기대어 사는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매춘부’였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비록 남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는 했지만, 거리의 매춘부로 일한 적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죽기직전 그녀가 ‘알고 지냈던 ‘남성만 50명이 넘은 것으로 사후 밝혀졌으며, 최후 5개월간은 로스앤젤레스 내에서 무려 11번이나 이사를 다녀야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빛나는 검은 머리칼과 미모를  지녔던 엘리자베스 쇼트는 주변 친지들에게 ‘블랙 다알리아’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녀의 마지막 흔적은 시신으로 발견되기 약 1주일전인 1947년 1월 9일 밤 10시. 한 유부남 세일즈맨이 그녀와 저녁시간을 보낸뒤 자동차로 LA시내 빌트모어 호텔에 데려다줬던 것으로 훗날 경찰조사결과 나타났다. 그후 그녀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LA는 물론 미국 전국이 발칵뒤집혔다. 배우를 꿈꿨던 미모의 젊은 여성이 살해된 것이다. 그것도 엽기적으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피살당한 여자의 비참한 말로는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여자가 생존에 ‘블랙 다알리아’란 별명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사건에서 섹스와 피 냄새를 맡은 대중과 문화계는  엘리자베스 쇼트 파헤치기에 나섰고, 그 결과 그녀는  하나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더구나 사건이 발생된지 꼭 60년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채 미궁에 빠져있다는 사실 역시 ‘블랙 다알리아’사건을 20세기 미국의 전설로 만드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범죄소설가  제임스 엘로이(58)에게 ‘블랙 다알리아’사건은 단지 하나의 엽기적인 살인사건, 그 이상이었다. 열 살때 어머니가 벌겨벗진채 살해당한 모습을 목격했고, 청년기를 알코올중독자와 부랑자로 지내며 사회 밑바닥을 전전했던 그는 이 사건에서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부패와 욕망으로 뒤엉켜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치부를 발견해냈다.  

엘리자베스 쇼트가 살해당한지 40년째되던 해인 1987년 엘로이는 ‘블랙 다알리아’를 발표했다. 책 서문에서 그는 “어머니, 스물아홉해가 지나서야 이 피묻은 고별사를 올립니다”라고 적었다. ‘블랙다알리아’는 ‘LA컨피덴셜’과 함께 엘로이의 ‘LA 4부작’을 구성하면서 누아르 추리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소설의 모티프는 역시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두명의 형사 블랜처드와 블라이처트, 두 남자를 연결해주는 고리역할을 하는 케이, 그리고 살인사건의 열쇄를 지니고 있는 상류층 여성 매들린 등 가상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엘로이가 이소설에서 목표로 둔 것은 쇼트 살인사건 자체를 뛰어넘어, 40년대 아니 지금 현재 대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타락한 인생들을 통해 바라본 인간 존재 자체의 비극성 또는 지옥도이기 때문이다. 엘로이 자신도 ‘블랙다알리아’를 “어둡고, 성적으로 집착하며, 정서적으로 복잡한 작품”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는 소설 ‘블랙 다알리아’에 끌린 것으로 보인다. 드 팔마는 ‘드레스드 투 킬’‘바디 더블’‘레이징 케인’등 인간의 이중성, 모호성에 누구보다도 집착해온 감독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블랙 다알리아 사건만큼 많은 미스터리를 갖고 있는 사건은 드물다”라면서 “영국 런던에 잭 더 리퍼(19세기말 런던의 전설적인 연쇄살인범으로 아직까지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있다면 20세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블랙 다알리아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강박증에 관한 복잡한 영화”라고 자신의 신작을 소개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최근 기사에서 “살아 생전 단 한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지 못했던 영화배우 지망생 엘리자베스 쇼트가 죽은지 60년만에 드디어 영화출연의 소원을 이루게 됐다”고 의미심장하게 지적했다.


영화 ‘블랙다알리아’는 베니스 영화제 상영이후 가을쯤 전세계에서 개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