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

마이클 무어..누락된 이야기(끝)

bluefox61 2013. 7. 8. 16:41

마이클 무어는 도대체 어떻게해서 영화세계에 입문하게 됐을까요. 그 궁금증이 이번에 풀립니다. 결론은, 남의 다큐멘터리를 도와주다가였지요. 1986년 , 4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더불어, 미국 남부도 아닌, 중부 미시간에서 백인우월주의를 부르짖은 인종주의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미시간 플린트에서 개최된 백인인종주의대회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도와주던 '우리의' 마이클 무어는, 이 분야에 관한한 백전노장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카메라를 들고 나서길 꺼리는 상황에서, 역시나 오지랍넓게 나서게 됩니다.

 

섹시하게 선탠한 나치(Hot Tanned Nazi)

 

맞다. 그녀는 섹시했다. 그리고 선탠도 했다. 긴 금발머리칼과 달콤한 미소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내가 그녀에게 바로 그 질문을 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그녀의 나치 남자친구가 끼어들었다(그녀의 남자친구가 나치처럼 굴었다는게 아니라 검은색 돌격대원 유니폼을 입은 진짜 나치였다는 의미이다). 그는 팔로 여자친구를 감싸더니 포드 에코놀린 밴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밀어 열고 그녀를 뒷좌석에 태웠다. 그래서 햇빛 좋은 4월의 오후에 두 사람이 애정이 깃든 사랑을 나누려다보다 생각했다.

 

몇주전 나는 뉴욕 빌리지 보이스의 정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리지웨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레이건 경기후퇴로 미드웨스트 지역에서 상승하고 있는 극우세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제조업이 중심인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경제가 엉망이었지만 미시간주 플린트는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다양한 극우운동단체들은 일자리를 잃은 자동차업계 노동자들을 아리안족 우월주의운동의 잠재적인 충원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플린트가 왜 무너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단순명쾌한 답변을 갖고 있었다. “깜둥이와 유대인 때문!”이란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잘 먹히지 않았지만,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가르치고 전도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이클 무어가 인터뷰어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블러드 인 더 페이스'의 한장면>

 

 

로버트 마일스는 미시간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의 전 지도자였다. 맨해튼의 워시언 하이츠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클랜의 악명높은 우두머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말투에 지적이었고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을 무장해제시켜버리는 뉴욕 액센트를 구사하며 마치 빙크로스비 영화에 나오는 목사같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인종통합계획을 막기 위해 스쿨버스 10대에 불을 질러 7년동안 감옥에서 지냈던 자타공인 인종주의자였다.

마일스는 폭력과 인종 분리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백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몬태나, 아이다호, 와이오밍, 오리건, 워싱턴주를 백인전용지역으로 선포하기를 원했다. 히스패닉에게는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흑인에게는 딥 사우스 지역을 주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같은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그는 백인 우월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단체들을 하나로 합쳐 함께 일을 해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86년 봄, 4월의 어느 주말에 플린트 남부지역의 자기 농장에서 인종주의 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각 조직들이 저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비틀리고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대가 됐다. 다양한 클랜 조직들, 아리안 국가, 미국 나치, 크리스천 아이덴티티, 백인 파워 콘클라베 등 인종주의 미치광이들이라면 누구든 그곳에 모여들었다.

리지웨이는 내가 마일스를 설득해 촬영팀이 그 행사를 촬영할 수있도록 허가를 받아줄 수있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는 마일스가 분명 라고 하겠지만, 내가 한번 그를 설득해줄 수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라디오 프리 플린트란 이름의 록음악 방송국에서 주간 쇼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일스를 몇 번 출연자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마일스와 그의 동료들이 보기에 나는 지구상에서 제거해야할 해충같은 타입이었지만, 마일스 자신은 방송국에서 더할나위없이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설득해볼 수도 있을 것같았다. 어떤 사람의 내면이 정신이상적 방향을 취하고 있을 경우엔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경우엔 분명 수감생활도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의 신념은 견고했다. 백인은 선택받은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백인을 보필하도록 돼있는 존재였다. 백인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발상이라고?

어쨌든 나는 밥(로버트의 애칭 - 역자 주)에게 전화를 걸어서 뭣 좀 부탁할게 있는데 농장으로 찾아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는 나랑 통화하게 된 것을 반기면서 금요일 오후에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초대했다. 사교적이고 친절한 그의 아내가 아일랜드식 스튜와 집에서 구운 비스켓, 그리고 방금 만든 아이티를 내왔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내게 뉴욕에서 보낸 어린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십대 때 청년 그룹에 가입했는데, 주말이면 유니언 스퀘어에 가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흠씬 두드러패는 것이 주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헨리 키신저가 한 학년 위 선배였다는 말도 했다.

진주만 공습이후 마일스는 해군에 들어가 전쟁기간동안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아내와 함께 미시간으로 이사해 보험판매원이 됐다. 그리고 결국에는 성공해 미시간 보험간부회의 회장이 됐다. 당시에는 보험판매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려 사람들에게 왜 생명보험 등이 필요한지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했다. 힘든 일이었다. ‘중산층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인구계층은 어쩌면 한번도 이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 힘들게 번 돈을 누군가에게 넘겨준다는 개념에 익숙해있지 않았다. 당시엔 보험업계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탁월한 말솜씨의 소유자라는 점뿐만 아니라 이성의 목소리 그리고 공포의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화재로 집이 홀랑 타버린다거나, 자녀가 아프다든지, 또는 가족을 빈털터리 상태로 내버려두고 사망할 가능성 등 온갖 가능성들은 총동원해 한 가족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야 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개인의 보험설계사를 두는 시대가 됐다.

밥 마일즈는 그런 일을 아주 잘했던게 분명하다. 클랜의 어두운 세계로 일단 넘어가자 그는 아리안 민족 국가를 위한 완벽한 모집책이 됐다. 이 친절한 보험설계사는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유색인종들이 당신의 집을 불태우고, 딸들은 납치해가며, 당신의 목숨을 앗아가버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단순한 정책을 판매했던 것이다. 그는 부드러운 음조의 목소리로 합리적인 느낌으로 말을 했다. 평균적인 노동자들이 가지지 못한 재주가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미시간 클랜을 미국에서 가장 세력있는 인종주의 단체들 중 하나를 건설해냈다.

하지만 그날 금요일 오후, 차 한주전자를 더 우려내 마시면서 마일즈는 나의 할리우드친구들이 농장에 와서 자기와 집회를 촬영한다는데 대해 매우 기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당신이 신뢰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어요.” 그는 하얀색 파우더를 뿌린 비스킷으로 스튜 접시 바닥을 닦아 먹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를 알게 된다면 당신도 우리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엉덩이에 꼬리가 붙은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본대로 정직하게 보여주고 극장에서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결정할 수있게 해달라는 것 뿐입니다.”

 

나는 그에게 제임스 리지웨이가 2명의 공동감독과 함께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명은 플린트 파업사태를 기록한 단편영화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여성감독 앤 볼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여러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케빈 래퍼티였다. 또 세사람이 어떤 방향에 맞춰 영화를 만들지 않을뿐더러 해설자도 쓰지 않을 예정이며, 마치 파리처럼 벽에 붙어 카메라를 돌리기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는 아주 좋아하면서, 영화에 등장하게 될 증오단체들의 집회를 위해 축복을 내렸다.

집회 하루 전날 플린트로 날아온 리지웨이, 볼렌, 래퍼티는 나와 만나 계획을 논의했다. 이런 촬영팀과 일을 접해보기는 그때가 나로선 처음이었다. 나는 열심히 귀기울였다.

좋아요.” 그룹의 리더인 케빈 래퍼티가 말했다. “ 마이크, 그 사람들은 당신을 신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옆에 딱 붙어있으세요. 아무말도 할 필요없어요. 우리가 질문을 지시할거예요. 짐이 조사를 다 했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를 대비해 옆에 있어주세요. ”

물론이죠.” 어찌됐든 촬영팀에 참여하게 된 데에 흥분한 내가 말했다. “뭐든 필요하면 그러세요.”

메인 카메라는 내가 맡고 제2 카메라는 로버트( 좋은 평가를 받은 다큐멘터리 라디오 비키니의 감독인 로버트 스톤) , (볼렌)은 찰리와 모(영화학도 2)랑 사운드를 맡습니다. 촬영팀 규모가 꽤 커요. 그러니 잘 섞이도록 노력하고, 그 사람들 방해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섞이기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마일즈의 농장에 도착해보니 나치 제복과 다양한 모양의 나치 문양이 들어간 세련된 스포츠웨어, KKK 외투와 아리안 국가 배지, 백인 파워와 기독교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구호가 들어간 어깨띠 등으로 꾸민 수백명의 미국 시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국립보건원(NIH)이 근친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는지 비슷비슷해보이는 남녀가 참 많았다.

그 사람들은 당연한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봤지만 거의 모두가 촬영에 협조했다. , 마일스의 동료 지도자들이었던 로버트 버틀러와 윌리엄 피어스는 그렇지 않았다. 버틀러는 아이다호주 헤이든 레이크에서 아리안 국가 대표였고, 피어스는 내셔널 얼라이언스(미국 나치당의 후예들)의 대표이자 터너 일기(The Turner Diaries)’란 소설의 작가였다. 소설은 유대인에 의해 전복당한 미국에서 인종전쟁이 일어나 모든 유대인과 비백인들이 몰살당한다는 줄거리였다(이 작품은 한 젊은이(티머시 맥베이- 역자 주)에게 영감을 줘 약 10년뒤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를 유발했다).

피어스와 버틀러는 우리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챌만큼 명석했으며, 밥 마일즈처럼 아무 것도 숨길게 없다는 식의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다. 마일즈는 그 행사에서 연장자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우선 집회가 그의 농장에서 열리는 데다가 그의 결정이 내키지 않더라도 모두들 복종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집회 기간동안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는 참가자 몇 명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줍은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다.

당신 누구요?” 한 남자가 우리에게 바짝 들이대면서 화가난 듯 물었다. “어디서 온 겁니까? 정부 일을 하는거요?”

저희는 뉴욕에서 왔습니다.” 앤이 긴장감을 감추려 최선을 다하면서 대답했다.

보아하니 - 유대인 떼거리이구만!” 남자가 툴툴댔다. “나는 폭력적인 반유대주의자요! 그들전부를 증오해 .” 그는 걸어가면서 말했다.

저희 중에 유대인은 한명도 없는데요.” 케빈이 남자를 달래서 계속 말을 시키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그 때 내가 말을 받았다.

저는 뉴욕이 아니라 바로 여기 출신이예요.”

나는 그 당시엔 유명인이 아니었던 데다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아주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돌아서더니 나를 훝어본 후 그 다음부터는 나에게만 말을 했다.

당신은 인종 반역자로는 보이지 않는구먼. 백인이고 이곳이 당신 고장이라니 말이야. 인종 반역자들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갔어. 그들은 전부 제거하기 전까지는 쉴 수없다네.”

하지만 나는 최고의 인종반역자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은 6명뿐이었고, 그들은 200명이었다. 우리에게는 카메라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총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공기총을 쏘아 표적물을 맞춰 쓰러뜨리는 게임에 등장하는 오리가 된 것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는 약 10m 밖에서 움직이는 오리 표적물이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사악하고 증오에 가득찬 무서운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마을에 멀리 떨어진 이 농장에 들어오다니 진짜 멍청한 짓을 했네.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케빈과 짐이 밴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하자고 제안했다. 인종우월주의자들 틈에서 빠져나왔을 때 짐이 제작팀원들의 집단정서를 대변하는 말했다.

나 카메라 앞에 서기 싫어.” 짐이 케빈에게 말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카메라에 서면 안될 것같아. 너무 위험해.”

내가 제일 원치않는 상황은 말이야.” 앤이 거들었다. “ 영화가 공개됐을 때 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이고 어디 사는지 알게 되는거야.”

내 생각도 그래. ” 케빈이 동의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촬영팀원들 가운데 제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어때요, 마이크? 당신은 괜찮아요? 당신은 그 사람과 잘지내 다행이예요. 조금 더 해볼래요?”

감독인 케빈이 지금 나를 희생양으로 캐스팅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촬영팀원들이 저들을 조롱하는 영화가 개봉된 후 일어날 일을 왜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이죠. 원하는건 뭐든 다 할게요. 저는 저 사람들 인터뷰하는거 상관없어요.”

카메라 앞에 서도 상관없어요? ” 케빈이 다시한번 확인하며 물었다.

글쎄요. 뭐 화면에 제 모습이 나오는 걸 참고 보기는 분명 어렵겠지만요! ”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설게요. 당신이 원한다면 저 사람들 속에 섞여 볼게요. 저는 정말 저 사람들이 뭐가됐든 무섭지 않아요. 나는 저들과 함께 살아왔는걸요. 분노에 가득찬 많은 백인들과 함께 말이예요.”

그리고 나서 나는 촬영팀원들에게 클랜 멤버들이 프로테스탄트인 할아버지가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집 마당에다 십자가를 세우고 불을 질렀던 이야기를 해줬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일을 제가 하게 돼 행복합니다.”

동의하기 전에 더 생각해보세요. ” 앤이 말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당신은 여기에서 계속 살아야하잖아요.”

나는 그들에게 경제사정이 악화되는 바람에 신문사 문을 닫기로 했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플린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다.

괜찮을거예요.” 내가 다시한번 말했다. “ 제 생각엔 플린트시와 저는 서로의 끝을 본 것같아요.”

좋아요.” 케빈이 말했다. “ 그냥 당신의 본능을 믿으세요. 그럼 우리가 당신이 저들과 하는 것을 찍을게요. , 모두 살아서 여기를 나갑시다.”

 

 

그렇게 해서, 영화로의 내 직업적 일탈이 시작됐다. 최소한 그 주말동안 말이다. 재미있을 것같았고, 나는 백인 기독교인 동료들과 빠르게 죽이 잘 맞았다.

우리는 조그(ZOG)를 무찌르려 여기 온겁니다.” 한 남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지금 영화 '자르도즈(Zardoz)'에 나오는 신을 말하는건가 생각하면서 신속히 기억을 더듬었다.

조그가 뭔가요?” 내가 물었다.

시오니스트 점령 정부(Zionist Occupied Government)!” 남자가 대답했다. “지금 우리 정부가 그 꼴 아닙니까. 유대인과 인종반역자들에 의해 점령당한 정부요.”

마일즈는 자기 헛간 안에 무대와 연단을 만들어놓고, 각종 전체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앉을 의자도 배치해놓고 있었다. 그 주말동안 제일 웃겼던 것은 연단에 올라선 연사들마다 자기 바로 앞에 연설했던 사람들보다 더 미치광이처럼 굴려고 애쓰는 점이었다. 한 남자가 일어서 말하길 자기가 이끈 백인 파워 그룹은 이탈리아 밀라노 남쪽 아래로는 회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밀라노보다 아래 쪽에서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럽 지리 지식과 이탈리아어를 과시하면서 말했다. “ 그 아래로는 우리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아래로는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우리는 나치보다 더 한 나치입니다.” 남자는 말을 끝냈다.

다음 연설자가 일어서더니, 노스캐롤라이나 메인 스트리트에서 자기네 아리안 단체가 퍼레이드를 했던 때에 대해 말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깜둥이들 어디있나.’ 그리고 두 블록 더 걸어가니 거기 그들이 있는게 보였습니다. 길 양 옆으로 서있길래 우리는 그 한가운데로 바로 행진해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그냥 길에서 위아래로 뛰었을 뿐이었지요. 흥분한 원숭이들이 위아래로 뛰는걸 보셨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마일스의 친구 한명이 무대 위에 올라가더니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는 스크린을 짚으면서 백인들이 혁명이후 태평양 북서부를 어떻게 장악하고, 다른 인종들이 미국의 다른 부분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그때 청중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분노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내 평생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멍청하고 엉뚱한 제안입니다.” 남자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소리쳤다. “만약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아리안 전사들이라면 도대체 왜 이 나라의 한 구석탱이에 처박혀있어야 합니까? 나는 그 곳에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관심없습니다.”

무대 위의 남자는 당황한 듯했지만, 자기 아내한테 가더니 청중들에게 지도를 나눠주라고 부탁했다. 상황은 구석으로 이사가기를 거부한 남자의 동의를 얻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때 또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나는 이곳 미시간에 삽니다. 절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을 겁니다.”

윌리엄 피어스가 무대 위에 올라오면서 상황은 진정됐다. 그는 그곳에서 마치 록의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피어스는 지식인답게 말을 했으며, 교육받지 못한 거친 청중을 조용하게 만들기 보다는 어휘와 열정으로 그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이런 똑똑한 사람(그리고 유대인이 아니면서!)이 내 편이라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같았다. 그는 라이스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콜로라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1950년대에 로스 알라모스 실험실에서 일했고, 그리고 나서는 오리건대 조교수가 됐다.

피어스는 그들의 운동을 학문화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인종적 입장을 취한 만화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력있게 말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대부분의 미국 가정은 비디오테이프를 볼 수 있는 VCR을 갖게 될 겁니다.” KKK 전 리더 돈 블랙이 거들었다. “우리가 갖춰야할 것은 우리 자신만의 비디오 프로그래밍 네트워크입니다.”

이틀동안 연사들이 지겨울정도로 말을 늘어놓아 이제 들을만큼 들었다 싶었을 때, 새로운 연사가 등장해 유색인종과 너무 가까이 일하고 호흡하는 바람에 어떻게 인종혼합이 일어나게 됐는가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흑인 정자로 백인 난자를 수정시키는게 더 이상 당신의 몸에 깜둥이 피를 넣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깜둥이 근처에만 있어도 깜둥이 세포를 낚을 수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 한 노인이 내게 물었다. “칠면조가 닭과 짝짓기하는 것 본 적 없지요? 개랑 고양이가 하던가요? 동물들은 자기네들끼리 짝을 짓잖아요. 우리도 같아요. 다른 식은 자연스러운게 아니예요.”

바로 그 순간 발기한 독일 셰퍼드가 다른 개에 올라탔다. 타이밍이 고마웠다. 케빈이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케빈은 한쪽 눈으로 렌즈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다른 한쪽 눈으로는 카메라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재밌는 볼거리였던 개들의 교미가 커다란 문제거리로 비화했다.

!” 한 남자가 말했다. “저기 그 암컷 개 유색 아니야?” 그런데 남자는 개 두 마리가 사실은 수컷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게이 개들의 성교를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남자에겐 최초의 동성애 행동이었고, 나는 그와 함께 그 광경을 나눌 수있게 된데 대해 프라이드를 느꼈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또다른 남자는 그것을 웃긴 일로 여기지 않았다. 나치의 개가 퀴어임으로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찍지마!” 한 사람이 말했다. 케빈은 재빨리 사과하면서 카메라를 얼굴에서 치웠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모든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계속 돌리다니 진짜 배짱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참가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젊은이 몇사람에게 직업이 뭐냐고 내가 물었다. 한 사람은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고 , 또 다른 사람은 자동차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실직 중이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언제가 행동을 취할 때인지에 대해 동경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때가 언제인가요?” 내가 물었다.

깜둥이들이 행동에 들어가고, 유대인들이 세워놓은 이 경제가 무너져 내리자마자이지요. 25년쯤 내에 일어날 겁니다.”

그 남자 옆에는 여자친구가 서있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검은색 나치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옅은 파란색의 스카프와 반짝거리는 펜던트로 약간의 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타이없이 셔츠만 입고는 앞가슴 버튼을 한 두 개(아니면 세 개)쯤 풀었다. 퍼머를 해서 웨이브가 진 긴 금발머리에 나치 상징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음조가 높고 부드러우며 섹시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인디고 색깔 아이라이너로 눈을 강조했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선탠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나는 반나절이나 기다리며 기회를 노렸다.

이보세요.” 점심시간 후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녀가 관능적인 태도로 말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당신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전형적인 나치로 보이지 않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사람같아요.” 나이 서른둘에 어떻게 작업거는지도 모르던 사람 입에서 농탕질치는 말이 술술 나오는데 나 자신도 놀라며 말했다. “당신은 코퍼톤(Coppertone : 미국의 대표적인 선크림 브랜드 - 역자 주) 광고에 출연해도 되겠어요!”

여자가 키득거리며 오오..”라고 말하는데 매릴린 몬로와 듀크 오브 해저드드라마 여자주인공의 사이를 넘나드는 수줍으면서도 겸손한 톤으로 말했다. “저는 그냥 유대인에 반대하는거 뿐이예요. 흑인들도요.”

그녀는 눈을 깜박이면서 아시잖아요, 백인 파워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크게 미소지었다. 그래, 백인 파워. 섹시한데.

 

증오엑스포의 마지막 날 나는 크리스천 아이덴티티 운동의 목사 몇 명들과 함께 농장의 응접실에 마주 앉았다. 그들은 자기네 커뮤니티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백인 우월주의 복음을 설교해왔다. 그들이 흑인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신께서 그들에게 흑인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저는 유색인종을 경멸하는 것보다 소문자 c의 크리스천 지도자들을 더 경멸하고 있습니다.” 미시간 그랜드 래피즈에서 온 앨런 포 목사가 말했다. “(빌리) 그레이엄, (제리) 팔웰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숨을 내쉬면서 비웃듯이 중얼거렸다. “슈바르츠(Schwartz; 독일어로 흑인이란 의미 - 역자 주)!” (그는 그런 식으로 제리 팔웰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본명이 아닐 것이란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다) “만약 우리가 이 나라를 힘으로 취하기를 진정으로 원했다면, 그런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 쌓아놓고 조용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신이나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말입니다.” 방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시대에 있습니다.” 그랜드 래피즈에서 온 목사가 말했다.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어요.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백인들, 자신들의 인종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의 명단을 말입니다. 인종 반역자들의 리스트를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있으면 , 혁명의 날이 닥쳤을 때 누구를 처리해야하는지 알 수있지요.”

그 때 그 목사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들이 우리를 으깨버릴 때 우리가 어디서 당신을 찾겠습니까? 같은 증기롤러 아래서일까요?”

방금 저 사람이 나를 위협한 것인가? 내가 케빈을 쳐다봤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에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적절한 의전이 있는지 어쩐지는 알 수없었다. 케빈이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은 이 나라에서 목격하고자 하는 날을 절대 보지 못할 겁니다.” 내가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할터이니까요.”

와우.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방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선 - 내 편, 네 편, 심지어 구석에 있는 게이 개에 이르기까지 -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느꼈다. 내 말을 들은 포 목사의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폭발했다. 마치 나를 두드러패려는 듯 보였다. 그의 두 눈에는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보시오! 우리는 지지않아요! ” 그 남자가 소리질렀다. “우리 열명뿐이어도 상관없어요. 우리는 이길거니까요!”

그러더니 천정을 가르켰다. “ 그 분이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포는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나를 때리면 자기가 영화 속 히러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는 보잘것없는 다큐멘터리에서 질문이나 하면서 입씨름을 벌이는 비천한 프로덕션 보조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주말 내내 깜둥이 이것’‘깜둥이 저것말을 들을만치 들었던데다가 포 목사가 나를 어떻게 하려는 듯해서, 평소의 비폭력 원칙에 따라 밖으로 나가 다리 운동도 하다가 30분쯤 뒤에 다시 들어갔다. 포 목사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제 우리가 짐을 꾸려 떠나야할 시간이 됐다.

우리는 헛간 밖에 있던 마일스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했다. 케빈이 마일즈에게 물었다. “왜 저희를 여기 오도록 해주셨나요?” “우리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했을텐데요. 왜 그랬지요?”

당신이 우리를 이용하는 방식대로 우리도 당신을 이용할 수있기 때문에 이곳에 초대를 한 것이지요.” 마일즈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이 모르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많은 청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당신들을 이용했어요. 사실, 그 영화를 보는 100명 중에 99명은 아마도 우리를 미워할 겁니다. 하지만 한명은 우리를 사랑할 거예요. 바로 그렇게 우리의 운동을 세워나가는거죠. 여기서 한 명, 저기서 한명, 이런 식으로 한번에 한 명씩이요. 여러분은 틀림없이 그 영화를 가능한 수백명 아니 수천명에게 보여주겠지요. 우리는 그 각각의 청중들 속에서 하나의 영혼을 찾으려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해주실겁니다.”

밥 마일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마치 정신이 들게 만드는 쓴 약을 삼키는 것같았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책임은 과연 무엇일까? 아리안 국가같은 이벤트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아예 촬영하지 말고 그저 무시하는게 더 나았을까? 아니면 최선의 방어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그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편이 더 나을까?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주유소에 들렀다. 창문에는 이런 표시판이 붙어있었다. 여기서 홈비디오 영화 빌리세요!

와우.” 내가 말했다. “저것 좀 보세요. 주유소에서 영화를 빌릴 수있다네요. 이런 시대가 온 걸까요? 과자나 빵처럼 영화가 팔리는 시대가 된 건가요?”

내 생각엔 저게 미래인 것같아요.‘ 앤이 어떤 집 뒷마당에 설치된 대형 위성접시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리고 분명 아리안 친구들이 저걸 잘 써먹을 방법을 찾을 것같네요.“

좋은 촬영이었어.” 케빈이 지적했다. “우리를 위해 그런 자리를 마련해줘 고마워요.” 그가 내게 말했다. “ 그 사람들과 진짜 자연스럽던데요. 이런 일 더 해보는 것 생각해봐요.”

섹시한 나치와 어울리라고요?” 내가 물었다.

, 바로 그거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촬영팀에게 커피와 간식을 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