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연인], 장예모의 진화 또는 변절?

bluefox61 2004. 9. 15. 15:46

장예모의 신작 '연인'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역시 스펙터클한 비주얼이다. 당나라 도성의 기방 깊은 곳에서부터 대나무 숲과 억새풀 우거진 들판을 거쳐 광활한 흰눈밭으로 장예모는 관객들을 휘몰고 다니며 현란한 액션과 색깔의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중 한사람인 장예모가 작정하고 스타일의 극치를 선보인만큼, 이 영화의 비주얼은 빼어나다. 
두 남자주인공의 칼싸움이 낙엽지는 가을에 시작해 눈보라치는 겨울까지 이어지거나, 가을에 죽은(줄만알았던) 메이(장쯔이)가 눈 밭에 파묻혔다가 멀쩡히 기사회생하는 '대륙적 과장(또는 허풍)'마저도 이 영화의 탁월한 비주얼 덕분에 쉽게 잊혀질 정도다. 
특히 장예모의 전작 '영웅'이 외국어영화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미국시장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연속 2주간 차지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할리우드와는 또다른 액션과 비주얼의 중국영화로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겠다는 장예모의 야심은 산업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게 사실이다. 

장예모는 그동안 형식주의자에서 자연주의자(책상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길, 행복한 날들)를 거쳐 또다시 스타일리스트로 몇단계의 변신을 거쳐왔다. 이제 그는 '영웅'과 '연인'을 통해 , 블럭버스터주의자로서 다시 한번 거듭나고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스타일을 내세운 대자본 영화는 장예모의 오랜 야심이었다. '연인' 공리를 세기초 상하이 밤무대 무희로 내세웠던 95년작 '상하이 트라이어드'가 대표적인 경우. 이작품의 대실패로 장예모와 공리는 결국 결별했고, 장예모는 대작영화의 꿈을 접어 '집으로 가는 길' 등 이른바 자연주의 영화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처럼 여러차례의 영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5세대 감독 장예모에게 끝까지 따라다니는 것은 이국적 취향으로서의 중국이다. '연인'을 보다보면 지하장커같은 지하전영 감독이나, 6세대 후배감독들로부터 장예모가 비난받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서구 관객들이 열광하는 '중국취향'을 뻔뻔스러울정도로 노골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비주얼이 멋지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연인'에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무엇보다 '장예모'이기때문이다. 그는 반란집단인 '비도문'을 통해 혼란에 빠진 당대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듯하지만, 사실상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사회적, 역사적 요소는 사실 이 영화에서 없어도 좋을만큼 보잘것없이 취급받고 있다.(장예모는 유방에게 포위당한 항우의 처지를 가르키는 '십면매복(十面埋伏)'을 영화제목으로 차용하면서도,원래의 정치적 역사적 코드를 완전히 빼버리고 절망적 상황에 빠진 연인들의 심리를 나타내는 장치로만 이 단어를 이용하고 있다) 


대신 장예모가 관심을 둔 것은, 난세 또는 그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이 아니라 정염에 온 몸을 내던지는 남녀의 삼각관계와 관객의 정서를 한껏 자극하는 수단으로서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마저도 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엇갈린 세 남녀의 감정 묘사가 어설프고, 유덕화의 연기는 '무간도'로 재기한 그 배우가 맞나 싶을만큼 어색하다. 

돌이켜보면 '와호장룡'이 특별했던 것은 '칼싸움'과 함께 '인간'과 '삶'에 대한 사유와 시선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연인'이 유혹적이긴해도 품격있는 미인이 되지못한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 아닐까. 
장예모는 '연인'에서 무협의 고전적 주제인 '충'의 문제보다는 '정염'을 정면에서 다룸으로써, 기존 무협과의 차별화를 꾀하고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정통무협의 또하나의 핵심인 '인문적 사유'까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크기'와 '멋'의 강박관념에 점점 더 사로잡혀가는 듯한 장예모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