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공포영화팬들께 추천합니다-[쓰리몬스터][알포인트]

bluefox61 2004. 8. 24. 15:44

[쓰리 몬스터]와 [알 포인트]는 최근 개봉된 한국영화([쓰리몬스터]는 한,일,홍콩합작)들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들이다. 
공포 코드를 갖고 있는 두 작품은, 단순히 소재로서의 공포를 벗어나 인간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분열적 자아의 공포(쓰리 몬스터 중 박찬욱 편 '컷')와 전쟁의 공포(알포인트)를 파헤친 시도가 돋보인다. 

[쓰리 몬스터]의 '컷' 는 한 천재 영화감독에 닥친 하룻밤의 악몽에 관한 이야기이다. 능력있고 착하며, 게다가 부자이고 인형같은 마누라까지 있는 영화감독 류지호(이병헌)의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괴한의 요구는 피아노 줄에 마리오네트마냥 매달린 아내의 손가락이 5분마다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보거나 괴한이 데려온 생면부지의 소녀를 교살하는 것. 

제한된 시간과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극한 상황. 모든 것을 다 가진 이와 모든 것이 결핍된 자의 심리적 충돌.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권력 관계.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수더분한 괴한, 겉으로는 착하지만 알고보면 내면에 '몬스터'를 간직한 감독! 박찬욱의 복수 2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을 관통해온 주제인 인간사의 '아이러니'와 '딜레마'는 '컷'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한 영화감독의 분열된 자아가 만들어낸 악몽인가? 
그 어느쪽이든 사실 상관없다. 감독은 현실과 환상(세트와 집, 영화촬영과 실제 사건, 영화 속 흡혈귀와 범인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아내 등) 의 경계를 과감하게 무너뜨림으로써, 정상과 비정상, 천사와 몬스터를 동시에 품은 인간의 내면을 해부해내고 있는 것이다. 
30분남짓의 길이인 '컷'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박찬욱감독의 연출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실상 3명의 인물만으로 극단적 감정의 충돌을 압축해내는 연극적인 설정이란 점에서 , 박감독의 연극 쪽 욕심을 읽을 수도 있는 작품. 잔혹과 유머, B급 악취미와 아트영화적인 철학성, 그리고 대사부터 소품 설정에 이르기까지 작은 고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구성력에 이르기까지 나무랄데가 없다.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가 언니의 죽음이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채 '정신적 샴쌍동이'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악몽을 환상적으로 그려냈다면, 프루트 챈의 '만두'는 젊음을 향한 탐욕을 '몬스터'화한 작품. 미국 옴니버스 공포 드라마 시리즈 '환상특급'의 드라마 한편을 보는 듯 , 세련되면서도 은근한 공포로 세편중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수있을 것같다. 

공수창 감독의 '알 포인트'는 전쟁자체를 '공포'로 표현해낸 , 강력한 반전영화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개봉 첫주말 약 50만명을 동원, 전쟁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징크스를 깼다는 것도 반갑다. 

영화는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한국군을 찾기 위해 로미오 포인트에 투입된 한 소대의 이야기다. 로미오 포인트는 프랑스 식민체제 말기부터 현재까지 알수없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고 묻힌 '저주받은 땅.' 밤마다 무선교신을 보내는 프랑스 쌍둥이 형제나, 4일마다 안개가 걷힌 한밤중에만 무선시설 보수를 위해 로미오 포인트를 찾아오는 미군 병사들이나, 또 실종된 한국군인들이나, 흰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소녀나 , 그리고 실종 부대를 찾아나선 최중위의 소대원들이나, 모두 다 '전쟁(폭력 또는 인간의 탐욕)'의 희생자일 뿐이다. 


중반부까지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 , 폐가 안에서 소대원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시퀀스에서 긴장감을 폭발시키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잘한 단점들도 눈에 띄인다. 최중위와 선임하사 간의 갈등, 때때로 모호하게 처리된 대사, 눈에 거슬리는 공포 코드(무전기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전형적인 공포조장 효과음 , 고대사원을 쓸데없이 으스스한 장소로 몰고간 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 


프랑스 식민체제 말기 프랑스인들의 집단학살부터 최중위 소대의 죽음까지 모든 죽음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지나치게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반전메시지를 보다 강력하게 관객에게 각인시킬수있는 기회까지 상당부분 놓친 것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