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영화광세대에게 종로 2가의 코아극장은 특별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일겁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동사서독' 등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코아극장이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류승완이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쁨을 안겨주었던 곳도 코아극장이었습니다.
영화뿐이겠습니까. 코아극장 앞은 종로서적과 함께 우리들의 단골 약속장소였고, 돈 좀 있는 날에는 반줄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즐기는 호기를 부렸는가하면, 호주머니가 가벼운 날은 오뎅과 떡볶이 한 접시를 친구들과 뚝딱 먹어치우며 수다를 떨었던 곳도 코아극장 주변에서였죠.
특히나 코아극장은 저같은 '프랑스 문화원'세대에겐 문화원 지하극장의 매케한 곰팡내를 추억할 수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이 작아도, 좌석이 조금 불편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있었죠. 다른 극장에서 만나기 힘든 영화가 있다는 기쁨 하나 때문에요. 몇해전부터 코아극장은 이른바 코아아트홀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상업영화의 도도한 바람 속에서도 좋은 작품을 장기상영하는 '만용'을 부려가며 버텨왔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영화 바람도 시들해지고, 더 화려하고 더 안락한 극장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때문에 코아아트홀은 최근들어 명맥만 이어나가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코아 아트홀이 지난 25일 끝난 '종로 영화제'를 마지막으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코아 건물 3층은 상점들로 바뀐다고 합니다. 2층의 '베니건스'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컨대 비슷한 류의 식당이 들어서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은날의 한자락이 드리워져있는 코아의 조용한 퇴장이 못내 아쉽네요. 코아가 우리 영화문화에 남긴 자취로 볼때, 그 퇴장이 너무나 무관심 속에 초라하게 이뤄지고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생존'이 제1과제가 돼버린 이 각박한 시대에서 예술영화를 운운하는 것자체가 어쩌면 안이한 일이겠죠. 그리고 극장에게 무조건 '명분'과 '문화적 책임'따위를 요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구요. 시네코아측은 종로 3가의 멀티플렉스를 통해 코아아트홀의 전통을 계속 살려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그 숱한 공약들을 되돌아볼때, 과연 그런 다짐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있을런지 의심스러운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제가 좋아하는 또하나의 영화공간인 아트선재센터내의 서울 시네마테크도 센터측과의 계약연장실패로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할 처지라고 하더군요. 영화광들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있는 오아시스같은 영화공간 하나쯤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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