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크림과 코소보 분리독립... 같은 점과 다른 점

bluefox61 2014. 3. 13. 11:44

 크림자치공화국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는 16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크림 분리독립의 합법성 근거로 지난 2008년 코소보 독립을 국제사회가 승인했던 것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학살당했던 코소보와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위협이 전혀 없는 크림 상황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주장이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대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프란츠 로타르 알트만 교수는 12일 독일 도이치벨레와 인터뷰에서 "코소보와 크림이 같다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가 같다는 격"이라고 일축했다. 미국 콜롬비아대 인권연구소의 평화체제구축 전문가인 데이비드 필립스도 허핑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코소보와 크림은 법적, 정치적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고연방의 세르비아 지역 내 자치구였던 코소보는 연방이 급속히 와해되던 1992년 주민투표를 실시해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신유고공화국'을 자처한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비상사태와 게염령을 발포하고, 코소보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에 대한 사실상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코소보 참사에 국제사회가 개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9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움직여 코소보에 투입했고, 이후 유엔은 결의안 제1244호를 통과시켜 유엔 주도하의 코소보 과도정부를 구성했다.그로부터 9년 뒤인 2008년 코소보가 주민투표를 통해 세르비아로부터의 완전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관련국들 간의 중재를 이끌며 2년 후인 2010년에 코소보 독립 인정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러시아는 체첸 등 자국 내 분리독립 세력의 준동을 우려해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4년 뒤인 지금은 코소보를 근거로 크림반도의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110개국이 코소보를 합법적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만,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아직도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알트만 교수는 도이치벨레와 인터뷰에서 "코소보에는 분명히 있었던 위협이 크림 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러시아가 합병 의도를 가지고 크림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코보소 경우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지적했다. 필립스는 코소보 사태에 국제사회가 개입하기 수년 전부터 세르비아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탄압과 학살이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코소보는 2008년 독립을 선언하기 전 9년동안 국제법적 기준을 만족시켰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

 

세르비아어로 ‘검은 새’란 의미를 가진 코소보는 ‘화약고’로 불려온 발칸반도의 복잡한 정치, 종교, 인종적 갈등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곳이다.


세르비아 남쪽의 ‘알바니아계 섬’격인 코소보는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에 면해 있다. 주민 220만명 중 92%는 알바니아계이다. 종교적으로는 수니파 이슬람 신자가 대다수이지만, 세르비아정교회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도원 등 가톨릭 관련 유적지도 많다.
유고연방의 격렬한 해체 과정 속에서 코소보가 1990년대 중반부터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추진하자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세르비아군뿐만 아니라 세르비아계 주민들에 의한 알바니아계 학살은 당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최소 1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30만명이 학살을 피해 주변국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이후 나토의 국제평화유지군(KFOR)과 유엔코소보행정청(UNMIK)의 관리를 받아오던 코소보는 세르비아 내 자치주로 남아있다가 2008년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지난 2010년 7월 22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을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하는 의견을 내놓은 후, 국제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벌써부터 코소보처럼 분리독립에 박차를 가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가 하면, ICJ가 분열의 ‘판도라 상자’ 뚜껑을 열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코소보 독립을 적극 지지해온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은 “코소보의 경우 워낙 독특한 사례여서 (분리독립의) 전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에 대한 국제법 전문가들과 외신들의 반응은 대부분 회의적이다.
친서방, 반러시아를 표방하는 조지아(그루지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해온 압하지야자치공화국 정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조지아로부터 분리독립해야 할 근거가 코소보보다 훨씬 많다”며 국제사회의 인준을 촉구했다. 조지아로부터 일방적으로 분리독립을 선언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까지 러시아뿐이다. 구유고연방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 역시 “분리독립을 향한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게 됐다”며 ICJ의 의견을 적극 환영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ICJ에 코소보를 국제법 위반으로 제소했던 세르비아 정부는 올가을 유엔 총회에 이 문제를 의제로 상정할 계획이다.
ICJ의 오와다 히사시 재판장은 22일 낭독한 의견서에서 “국제법은 (어느 누구의) 독립선언도 금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코소보의 독립선언은 일반적 국제법상 위법행위가 아니다”고 밝혔다. ‘영토보존 및 통합’과 ‘자결권’ 사이에서 후자쪽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ICJ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 의견’이지만,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최고 국제재판소에서 내린 결정이란 점에서 전세계 분리독립운동 세력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메시지인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분리독립 세력과의 갈등이 없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영국 대 북아일랜드, 스리랑카 대 타밀, 스페인 대 바스크처럼 수십년째 격렬한 유혈충돌이 이어져온 곳부터 캐나다 대 퀘벡, 프랑스 대 코르시카, 벨기에의 네덜란드계 대 프랑스계처럼 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는 분리독립 갈등도 있다. 이들 분리독립세력이 코소보처럼 일방적인 독립선언을 못하고 있는 지정학적, 경제적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코소보가 과감한 행보를 취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과 영국의 막강한 뒷배경 덕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7개국(G7)이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장악한 러시아에 대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2일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과도정부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크림 반도에 러시아군이 주둔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영토보전"이라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에서 진로를 변경하지 않으면 미국과 국제 사회가 대가를 치르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야체뉴크 총리는 "러시아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서구 세계의 일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거의 매일 전화회담을 가져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2일 폴란드를 방문해 도날드 투스크 총리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상황 진전이 없으면 유럽연합(EU)가 내주 중 러시아에 2차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크림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 다음 날인 17일까지 상황 개선에 진전이 없으면 EU 외교장관들이 러시아 주요인사들의  자산 동결, 비자발급 중단 등의 제재안을 승인할 예정이며, 오는 20일에는 EU정상들이 긴급회의를 열어 사태해법을 추가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 전화회담에서 "크림의 러시아 합병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란 점을 재확인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G7과 EU지도자들은 12일 공동성명에서 "러시아가 크림자치공화국을 합병하면 우리는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추가 대응에 착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날 미국 상원은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 제재안을 승인했다.
 크림 반도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4일 영국 런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난다. 케리 장관은 12일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라브로프 장관에게 우크라이나 긴장을 완화할 옵션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AFP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12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우크라이나 의회 내 대표적인 타타르 계 지도자인 무스타파 제밀레프 의원과 30분간 전화통화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푸틴은 제밀레프 의원이 크림반도내 소수 타타르계 주민의 불안을 누그러뜨려주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제밀레프 의원은 16일 크림 주민투표의 불법성을 제기했다고 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