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푸틴의 근육과 미소

bluefox61 2007. 8. 24. 14:25

국가지도자에겐 ‘쉬는 일’도 정교한 전략에 따라 행하는 정치적 행보다. 휴가 모습이 한장의 사진으로 전세계에 보도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후 첫 바캉스를 유럽의 수많은 휴양지들을 제쳐두고 굳이 미국 동부 메인주의 작은 마을 울페보로에서 보낸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하겠다. 


처음엔 이 사진도 매일 수백장씩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사진들 중 하나쯤으로 생각했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설명은 간단했다. ‘푸틴 대통령이 모나코 국왕과 함께 투바 자치공화국 예니세이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푸틴이 왜 모나코 국왕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약 5000㎞나 떨어진 그 곳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웃통을 벗어젖히고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낸 푸틴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푸틴 사진들을 봐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올해 54세인 그가 이제 보니 ‘몸짱’이라니!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시절부터 유도와 스키 등 각종 스포츠로 건강을 다져왔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낚싯대를 잡고 있는 푸틴의 두 팔에는 이두박근이, 배에는 왕자의 ‘식스팩’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한 복근이 보기좋게 불거져 있었다. 두살 어린 사르코지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모자라지 않는 몸매였다.


이뿐만 아니다. 관영 리아 노보스티통신은 푸틴이 민소매셔츠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말을 타는 모습,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 모습, 캠프파이어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모습, 강변을 산책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도 쏟아냈다. 장족의 발전이다. 얼마전만 해도, 사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영 재주가 없었던 사람이 바로 푸틴이다. 오죽하면 2년전 크렘린궁 밖에서 푸틴과 마주쳤던 다섯살난 소년이 느닷없이 배에 뽀뽀를 당했다가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을까. 


푸틴의 몸짱사진은 지금 러시아에서도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프라우다지가 “푸틴처럼 되자”며 근육만들기 안내 기사를 실었는가 하면, 한 라디오방송에서 “국가지도자의 반나체는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토크쇼 진행자가 엄청난 항의 e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햇빛 아래 드러낸 푸틴의 근육질 상반신이 국제사회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 러시아의 자신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한때 외채 지불유예(모라토리엄)지경에 이르며 빈사상태에 놓였던 러시아 경제는 지금 오일달러로 두둑해진 돈지갑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미국과의 양대 군사대국으로서 면모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올해초 푸틴은 향후 7년간 2000억달러(약 189조원)의 재무장 예산을 책정했으며, 지난 21일에는 냉전 이후 최대 규모로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리고 있는 에어쇼에 참석해 군사항공기술 부문에서의 적극적인 개발 지원을 선언했다. 이번 에어쇼에선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대공 화기의 공격도 피할 수 있는 무인 스텔스 폭격기 ‘스카트’가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지난 7월초 과테말라에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한국의 평창 대신 러시아의 소치가 결정되기 전 솔직히 어느정도 예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미국을 거쳐 과테말라에 도착한 푸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외신들의 움직임과 관심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불길했던 것은, 푸틴이 카리스마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매력, 즉 ‘소프트 파워’까지 이용할 줄 알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근육과 미소, 양대 무기를 손에 쥔 푸틴의 향후 행보가 부쩍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