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아카데미가 주목한 낯선 배우들

bluefox61 2009. 2. 19. 14:53

국내개봉 중인 <다우트>는 뭐니뭐니해도 배우의 영화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뛰어난 작품이란 의미다.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캐릭터는 개방적인 플린 신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알로이셔스 수녀, 순진무구한 제임스 수녀 3사람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맡은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는 약10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심리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다우트>에는 위의 3명 이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또한명의 캐릭터가 있다.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1960년대 초 , 미국 뉴욕 브롱크스지역 가톨릭고등학교의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의 엄마 밀러부인이다. 영화 속에서 밀러부인이 등장하는 장면은 15분이 채 안된다.

 

이 짧은 장면 하나로, 지금 미국 영화계 안팎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배우가 있다. 주인공은 바이올라 데이비스(44). 데이비스는 대중적으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지만, 브로드웨이 등 미국 연극계에서는 이미 보석 같은 배우로 꼽혀왔다. 그는 <다우트>에서 알로이셔스 수녀역의 메릴 스트립를 압도하는 연기로 81회 아카데미 영화상 여우조연상에 생애 첫 노미네이트된 상태다. (스트립은 <다우트>로 생애 15번째, 호프먼은 2번째 아카데미 후보지명을 받았고, 에이미 애덤스도 생애 최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다우트>에서 밀러 부인은 아들 도널드와 플린 신부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알로이셔스 수녀에 의해 학교로 호출을 받는다. “당신 아들이 폴린 신부에 의해 성추행을 당한 것같다는 청천벽력같은 수녀의 말에 밀러 부인은 전혀 의외의 반응을 나타낸다. “내 아들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지긋지긋한 가난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신 같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알로이셔스 수녀의 비난에 밀러 부인은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매일 얻어맞고 미래에 대해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내아들의 처지를, 그런 아들을 바라만봐야하는 엄마의 심정을 당신은 아느냐고 절규한다. 작은 수녀원과 가톨릭 학교만을 무대로 펼쳐지던 날카로운 심리극의 한 가운데로 정치,사회,경제적 맥락이 ’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밀러 부인은 <다우트>전체에서 학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유일한 캐릭터다.  

 

<다우트>에서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는 경이로움그자체다. 그 자신은 미국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스트립과 호프먼 등 존경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랬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데이비스는 평론가들로부터 메릴 스트립으로부터 15분을 훔쳐낸 배우란 극찬을 받았다. 스트립도 데이비스를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 힘으로 가득찬 암사자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는 배우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 <다우트>에서 밀러부인과 알로이셔스 수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두 여자의 굴곡진 인생이 서로 맞부딛히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등장하는 약15분간의 한 시퀀스를 연기하기 위해 밀러 부인 캐릭터 분석리포트와 굴곡많은 삶을 담은 가상 바이오그래피를 수차례 작성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배우로 잔뼈가 굵은 데이비스는 2001년 뉴욕에서 공연된 연극 <킹 헤들리 2>로 토니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낙태권을 인정받기 위해 법 및 보수여론에 맟서 싸우는 30대 중반의 흑인 어머니를 열연했다. 영화는 <다우트>이전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솔라리스>를 비롯해 <앤트원 피셔>등에 출연한 적이 있고, TV 드라마로는 <&오더> 등에 등장했으나 시청자들의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었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의 연기부문에는 유난히 낯선 배우들이 많이 포함돼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우주연상 부문에 올라있는 <프로스트/닉슨>의 프랭크 랑겔라와 <비지터>의 리처드 젠킨스, 여우주연상 부문에 오른 <프로즌 리버>의 멜리사 레오, 남우 조연상부문에 오른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셰넌, 여우 조연상의 바이올라 데이비스를 비롯해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의 타라지 헨슨 등이 그런 배우들이다. 모두 연극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전형적인 늦깍이 스타.

 

랑겔라(71)78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공연한 연극 <드라큘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2007년 런던과 뉴욕에서 <프로스트/닉슨>을 공연해 토니상을 수상했던 배우다. 그는 연극에 이어 영화에서도 닉슨 역을 맡았다. 중후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배우지만, 일반 영화관객들에게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로만 각인돼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95 <컷 스로트 아일랜드>에서 해적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2005년 조지 클루니 감독의 <굿 나이트&굿 럭>에선 CBS 텔레비전의 페일리 사장 역을 맡았고, 2006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수퍼맨 리턴스>에서는 신문사 편집자로 등장했었다.

 

<프로즌 리버>의 멜리사 레오(49)는 영화 <21그램>,TV 드라마 <호머사이드>등에 출연해온 배우.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프로즌 리버>에서 가난 때문에 범죄에 휘말려들어가는 중년주부를 열연해 평단과 대중의 관심권 안에 들어오게 됐다. 마이클 셰넌(35)와 타라지 헨슨(39)는 각각 <레볼루셔너리로드>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에서 유명 인기스타 배우들 틈에서도 돋보이는 연기실력을 발휘해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22일 열리는 81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현재까지 수상이 가장 확실시되는 배우는 케이트 윈슬렛이다. 그는 <더 리더-책읽어주는 남자>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돼있다. 올해 33살의 나이에 벌써 6번째다. 같은 부문에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앤절리나 졸리, 멜리사 레오, 앤 헤서웨이가 올라있지만, 윈슬렛의 수상 가능성에 무게추가 기울어진 분위기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이미 영국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 미배우조합상 등을 휩쓸었다. 만약 수상에 실패한다면, <쿼바디스><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에 출연했던 데보라 커와 <이창><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의 델마 리터가 세웠던 6번 연속 수상실패의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남녀배우 통틀어 아카데미 최다수상실패 기록은 8번 후보에 지명돼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피터 오툴이다. 아카데미는 2003년에야 그에게 공로상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