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을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도통 좋은 줄 모르겠더라구요."
2년전 독일 베를린에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도중 운전사가 말을 걸었다. 택시는 돌로 만든 관인지 기둥인지 모를 수백, 아니 수천개의 네모난 조형물들이 꽉 들어차있는 장소 옆을 지나고 있었다.
운전사가 혹평한 그 곳은 2005년 개관한 홀로코스트 기념관. 잔혹한 인종말살 범죄 희생자들을 기리는 건축물로 과연 적당한 디자인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베를린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방인에겐 시내 한 복판, 그것도 베를린의 명물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리 멀지 않은 드넓은 장소에 2711개의 관 모양 조형물을 세워놓고 역사를 기억하는 독일의 정신은 감동 그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와 비슷한 감동을 최근 외신기사를 통해 다시한번 느꼈다.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 피해자에 대한 배상협약을 60년만에 대대적으로 개정해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배상금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반성자세야 이미 잘 알려져있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 범죄가 너무 크고 막중해서 배상협약을 계속 수정해나가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자세는 협약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유대단체 관계자들마저 깜짝 놀라게 했던 모양이다. 한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이 전세계 뿐만 아니라 자국 국민들을 향해 이 일(역사적 반성)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날 나치체제가 저지른 끔찍한 과오에 대해 "반성 할만큼 했으니 이제 됐다"란 없음을, 독일정부가 다름아닌 자국 국민들에게 일깨웠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와 중국 시진핑체제 출범이 마무리되자마자, 일본 중의원 해산과 조기총선이란 또하나의 빅 이벤트가 터졌다. 이미 예상됐던 일이었지만, 본격적인 선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 쪽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하나같이 우려스러운 것뿐이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라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 지사가 만든 태양당이 전격 합당을 선언했고,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자민당에서는 교과서 검정기준 중 일명 '근린제국조항'을 수정하자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근린제국조항이란 일본 교과서 검정 기준에 포함돼있는 '인접 아시아 국가와의 사이에 일어난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국제 이해와 국제협조의 시각에서 필요한 배려를 할 것'이라는 조항을 가리킨다.
자민당이 근린제국 조항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정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차기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의성향으로 볼 때 자라나는 세대가 보고 배울 교과서 왜곡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게 뻔하다. 민주당이 만에 하나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책임있는 역사의식에 관한한 별 기대할 구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3년으로 입증된 셈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표현 중 하나가 '국격'이다. 요란뻑적지근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고 국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남의 나라를 국격상승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국격은 역사에 겸허한 자세, 끝없는 자기반성, 그리고 약자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자세에서 나올 때 인정받을 수있다. 일본이 독일에게서 국격이란 과연 무엇인가 배워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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