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 랜드의 1957년작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초여름의 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5권짜리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절대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사상에 로맨스와 SF까지 한데 버무린 이 소설을 소화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랜드의 소설을 다시 손에 잡기는 '마천루(원제는 '파운틴헤드'·1943년작) '이후 십몇년만이다. 천재 건축가 주인공을 통해 모든 편견과 고난에 맞서는 영웅주의를 설파한 '마천루'가 랜드 사상의 대중보급판이라면, '아틀라스'는 작가의 모든 철학을 집대성한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명성을 익히 알고도 막상 선뜻 첫장을 펼치기 꺼려졌던 심정을 랜드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아틀라스'에서 최고의 강철과 엔진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사업가 행크 리어든과 철도회사 부사장 대그니 태거트,천재사상가이자 혁명가인 존 골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른 소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랜드의 소설이 늘 그렇듯 애증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 이기주의만이 세상을 이끄는 진정한 힘이라고 확신했던 작가가 둔재들의 세상을 향해 반란을 선포하는 골트의 입을 빌어 수십페이지에 걸쳐 일장연설하는 부분에 이르면 그만 책장을 덮고 싶어질 정도이다.
출간된지 50년이 넘은 '아틀라스'가 요즘 미국 언론에서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X세대 정치인으로 불리는 40대 초반의 폴 라이언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자신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아틀라스'를 꼽았기 때문이다.
랜드 광을 자처하는 하는 사람은 라이언뿐이 아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제도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수많은 유명인들이 '내인생의 소설'로 '아틀라스'를 지목했고, 미국의 한 기업인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무료 보급하기 위해 아인 랜드 재단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을 정도이다. 랜드가 소설 속에서 기부행위 자체를 나약한 자들의 위선으로 비난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랜드 재단에 따르면 최근들어 책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아틀라스'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그리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이미 2010년 미국 보수정치운동인 '티파티'행사장에 '나는 존 골트다'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파산지경에 몰린 유로존 국가들을 위한 돈줄로 발목이 잡힌 독일에서는 '아틀라스' 가 새 번역본으로 출간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사실 랜드의 정치경제철학을 현실에 접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랜드는 복지정책개편이 아니라 복지란 개념자체를 거부했고, '정의'를 내세운 전쟁은 물론 약물규제나 낙태금지정책도 개인의 선택권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종교와 정치의 결합도 랜드가 극도로 혐오했던 것이다. 폴 라이언이 랜드정신의 계승자를 자처하지만, 랜드가 살아있다면 그의 어정쩡한 보수주의에 기겁했으리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 시대에 "돈이란 모든 인간이 자신의 정신과 노력의 주인이라는 규범에 근거한 것"이란 랜드의 철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만큼 사실이다. "정직한 자란 자신이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할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란 소설 속 골트의 발언은 " 번 것만큼 쓰는게 내가 아는 상식"이라며 돈지갑 풀기를 거부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가 그대로 인용한게 아닐까 싶을만큼 딱들어맞는다. 그것이 오늘날 랜드를 다시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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