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책을 읽자

슈마허의 '굿 워크'

bluefox61 2012. 1. 25. 20:14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한줄의 문장으로 현대인의 뇌리에 각인된 영국 경제학자 E F 슈마허(1911~1977).

나는 그의 메시지를 완전히 잘못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았다. 그가 1973년 펴낸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지 않고서도 마치 아는듯 굴었던 탓이다.



'구기자'의 강력한 추천으로 슘페터가 7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굿 워크]를 읽었다. 그가 세상을 뜬 3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는지, 그의 철학을 이해할 수있었다. 나는 그동안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고도의 집약된 기술로 인간이 쓰기 편리하게 만든 첨단의 제품쯤을 가르키는 말로 생각했었던 것같다. 손톱보다 더 작은 반도체칩 하나로 만들어낼 수있는 무궁무진한 기능에 대한 찬사라고나 할까. 

하지만 슈마허의 철학은 정반대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기술과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한다는 것이다. 저개발국가들을 위한 저에너지 소비형 전자제품이나 맞춤형 기술,친환경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요즘 상황을 생각해볼때,  슈마허의 사상은 이미 수십년 앞서나갔던 셈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슈마허의 사상은 철저하게 기독교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 근본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 등이야말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지나친 기독교성향은 다소 반감이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슈마허의 지적들 중 많은 부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예를 들어, 그는 현대산업사회의 본성을 4가지로 규정한다.


1. 광범위하게 복잡한 본성,

2.탐욕,시기심,욕심과 같은 치명적인 죄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이용하는 본성,

3.노동에서 품위와 만족을 없애버리는 본성,

4.과도하게 큰 규모로 인한 권위주의적 본성 


등이다.

 

그가 생각하는 노동의 목적 또는 진정한 가치는 3가지이다.


1.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고 유용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

2. 신이 주신 재능을 잘 발휘하여 타고난 각자의 재능을 완성하기 위해.

3.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될 수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협력하기 위해. 




슈마허는 산업사회의 사악한 본성이 오로지 금전적 이윤획득만을 추구하는 기업들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고 말한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 인간은 점점 더 거대기술의 노예가 된다. 

슈마허는 많은 사람들이 '기술'그 자체보다 '체제'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생활방식이 달라지려면 체제를 먼저 바꿔야한다고들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사람들은 으례 자본주의를 바꾸고, 관료주의를 뿌리뽑고, 교육시스템이나 다국적 기업체제를 바꾸는 게 우선돼야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슈마허는 체제를 바꾸는 것보다는 기술을 바꾸는 것, 즉 보다 친인간적인 '중간기술'을 도입, 활성화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중간기술'이란 거대기술과 다른, 인간이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있는 규모의 기술을 가르킨다. 실제로 그는 1965년에 '중간기술개발그룹'을 만들어,인도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들의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기술들을 전수하는 일을 했다. 즉, 토지를 일굴 도구도 에너지도 없지만 노동력은 풍부한 가난한 아프리카국가에 곡괭이와 트랙터의 중간쯤 되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국내총생산(GDP)으로 한국가의 부와 국민생활수준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총생산은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는 개념입니다. 국내총생산이란 경제에서 일정량의 자금흐름을 기술적으로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서는 유용하지만 어떤 식의 성취를 가늠하는데는 의미가 없는 방법입니다. 국내총생산은 순전히 양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통계는 정확할 필요는 없더라고 적어도 유의미하긴 해야합니다. 통계수치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낼 수없다면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게 한결같은 저의 지론입니다.

성장이 좋은 것이란 어떻게 단언할 수있습니까? 아이들이 성장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제가 갑자기 성장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쏭달쏭한 모든 걸 전부 합산하기보다는 서로 간에 질적인 구별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