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줄리안 무어

bluefox61 2008. 2. 18. 17:44

줄리안 무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용감한 여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60년생이니 올해 나이 48세. 인형같은 외모(제눈엔 무척 예뻐보이지만) 가 아닌데다가, 30대가 돼서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니 꽃같은 어린 나이도 아닙니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이죠( 수전 서랜든, 골디 혼처럼 인생의 파트너는 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무어가 용감한 이유는 첫째,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벗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엉덩이나 가슴 노출 수위를 놓고 온갖 구실과 조건을 내거는 여배우들과 달리 무어는 감독이 요구하면, 아니 작품이 요구하면 용감하게 옷을 벗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아직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에 출연했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컷]에서 시니컬한 성격의 젊은 주부역할로 등장, 술과 마약에 취한채 허리 아랫도리를 과감하게 나타났던 장면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나이츠]에서는 포르노여배우로 나와 수많은 촬영 스탭 앞에서 옷을 벗으며 연하인 상대배우 마크 월버그에게 ″뒤로 할래? 앞으로 할래?″라고 태연한 얼굴로 묻던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어가 용감한 두번째 진짜 이유는 ,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때문입니다. 


몇해전 한 잡지에서 기네스 펠트로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줄리안 무어를 꼽더군요. 독립영화와 오락영화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무어의 용기를 자기는 도저히 따라하기 어려울 것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네스 펠트로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미녀스타로 여겨지기 쉽지만, 사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블럭버스터 오락영화보다 [엠마][세익스피어 인 러브][리플리] [위대한 유산][포제션][로얄 테넨바움] 등 문예취향 영화나 [리노의 도박사](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슬라이딩 도어스] [바운스] 등 독립영화계열에 많이 출연했지요. 


사실 줄리안 무어는 미국 독립영화계가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라고 할 수있습니다. 

토드 헤인즈의 [세이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츠][매그놀리아]를 비롯해 [숏컷], 루이 말의 [42번가의 바냐], [애수](닐 조단)[쉬핑뉴스](라세 할스트롬)[사이코](구스 반 산트)[위대한 레보스키](코엔 형제) 등 그녀가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대부분 독립영화계열 감독들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쥬라기공원2][나인먼스][어새신][에볼루션][한니발] 등 오락흥행영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죠. 조디 포스터가 [양들의 침묵]의 속편 격인 [한니발] 출연을 거부했을때 이 영화의 제작자체를 반대하던 영화광들이 결국 뒤로 물러섰던데에는 ″줄리안 무어가 클라리스 스털링을 맡는다″는 뉴스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어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휴 그랜트와 함께 출연한 [나인 먼스], 그리고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어새신]을 통해서였습니다. 95년쯤 개봉했으니까 그녀의 나이 35세 때이군요. 

당시 많은 관객들은 그녀를 ″웬 늙고 못생긴 여자″로 치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폴 토머스 앤더슨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상륙하면서 관객들은 진흙 속에 뭍혀있던 진주같은 배우 무어를 재발견하게 됐지요. 


무어의 연기는 언뜻 보면 매우 건조하죠.

각지고 주근깨가 박힌 얼굴은 고전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서 그녀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회오리를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내는 놀라운 연기력의 소유자입니다. 

닐 조단의 [애수]에서 독일군의 폭격에 죽어가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 신에게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여자나, [파 프롬 헤븐]에서 금방이라고 깨져버릴 것같은 연약함과 사회 편견에 도전하는 용감함을 동시에 지닌 주부를 무어가 아니었다면 어느 배우도 그렇게 강렬하게 표현해지는 못했을 겁니다. 


메릴 스트립은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40이 넘은 여배우가 맡을 좋은 역이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스트립과 함께( [디 아워스]에서 델라웨어 부인역을 참으로 편안하면서도 절실하게 연기해냈지요) 무어같은 연기파 배우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있는 영화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좋아하는 배우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기쁨을 오랫동안 누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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