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영국 팝가수 엘턴 존,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한국의 사진작가 배병우(59·사진)씨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배병우씨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로 받았다. 엘턴 존은 2005년 그의 유명한 소나무 사진을 보더니 “바로 나를 위한 작품”이라고 격찬하며 1만5000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3136만원)를 내고 구매했다.
당시까지 한국 사진 작품 판매가로는 최고기록이었다. 필립 왕세자는 올해초 “당신의 소나무 사진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며 배병우씨를 수도 브뤼셀의 왕궁으로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배병우씨의 사진작품에 반한 이들은 세 사람말고도 일일이 손꼽기에 벅찰 지경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의 작업실, 스페인의 세계적인 의류업체 망고, 프랑스 시슬리 화장품 본사 건물에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런가하면 부산 해운대의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그의 거대한 소나무 사진 앞에서는 넋 놓고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 배병우인가, 아니 왜 그의 소나무 사진인가.
지난 8일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배병우씨의 작업실을 찾았다. 마침 그는 16일부터 스페인 그라나다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알함브라궁 내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영혼의 정원(The Soul Garden)-알함브라와 창덕궁’ 전시를 앞두고 출국 준비 중이었다. 지난 2년여동안 수십차례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들을 드디어 올 여름 그곳을 방문한 전세계인들 앞에 내놓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창덕궁과 그 후원(後園)을 알함브라궁의 후원과 나란히 선보인다니. 부쩍 더 호기심이 생겼다.
질문을 꺼내놓으려는 순간, 배병우씨는 “밥부터 먹고 하자”며 일어나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아일랜드식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도마를 꺼내고 칼을 잡았다. 야채를 칼로 자르고,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볶아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요리가 너무 좋아 한때 요리사가 될까도 생각했었다는 그의 손놀림은 소문대로 능숙했다. 1990년대말 아내와 사별한 이후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엔 매일 자신과 작업실 조수들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
대화는 그가 직접 요리한 버섯야채볶음, 된장찌개, 지중해식 토마토 샐러드, 생선구이 그리고 차가운 독일산 리즐링 화이트 와인을 사이에 두고 이어졌다.
“그라나다 문화재 관리국의 요청을 받고 알함브라 궁전을 찍으러 도착하고 나서야 ‘이 사람들이 왜 내게 자기네 궁을 찍어달라고 했나’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관광객들은 이슬람 양식의 화려한 궁 건물과 기하학적인 설계의 내부 정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바쁘잖습니까. 저도 오래전 알함브라에 갔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까 궁 뒤쪽으로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정원이 조성돼있더라고요. 그곳에서 가장 크고 높은 나무가 소나무이고, 숲의 중심 수종도 바로 소나무였습니다. 문화재 관리 책임자가 마드리드에서 열린 소나무 사진전을 보고 촬영을 부탁했는데, 동양인의 시각에서 과연 알함브라궁과 정원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던 모양이더군요.”
작업대 위에는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될 알함브라궁 사진의 복사본들이 흩어져 있었다. 안개에 싸인 소나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숲길, 현란한 무늬의 건물 창살 틈으로 새어드는 햇살 등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그 알함브라궁의 모습은 없었다. 2년동안 사계절을 찾아다니며 찍은 수천 컷 중 고르고 골라낸 것이 100여컷. 이중 전시회장에 걸리는 사진은 불과 44점뿐이다. 나머지는 곧 출간될 사진집에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그는 알함브라궁 국립박물관 전시회를 마치는 대로 오는 9월30일부터 10월29일까지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전관에서 대규모 개인전도 갖는다. 알함브라와 창덕궁 사진들을 이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창덕궁과 알함브라 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잖아요. 극동의 한국과 유럽 속 아랍의 정신(soul) 과 아름다움을 각각 대표하고 있는 곳이지요. 그 둘을 나란히 보여주면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된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창덕궁을 새로 촬영하기도 했어요.”
배병우씨는 세계 예술시장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한국 국적의 사진작가다. 그 스스로 “이젠 국내 마켓과 별개로 해외 마켓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해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재고가 없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엘턴 존이 소장하고 있는 소나무 사진은 얼마전 미국뉴욕현대미술관(MOMA)측이 구매의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했을 정도.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해 국제 예술시장에 소개했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저명한 큐레이터들은 배병우씨를 ‘미스터 마쓰(소나무)’란 별명으로 부른다. 그런가하면 지난 3월 스위스 취리히 전시회에서는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열렬 팬들이 너무 많아 스스로도 놀랐다고.
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바다, 소나무 등 줄곧 자연을 필름을 담아왔다. 그는 30대 독일 유학시절에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의 미학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 남을 흉내내고 유행을 따르지 말자는 생각과 다짐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우리(한국)가 발명한 테크놀로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20대 때는 미국의 저명한 사진작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통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더군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숱하게 드나들었고 고려불화, 일본회화, 일본 우키요에 판화작품도 많이 공부했지요. 그러다보니 한국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소나무를 만나게 된 듯합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소나무를 찍어오고 있는 그는 소나무에 대해 ‘한반도의 등뼈인 태백산맥의 피와 살’이라고 말한다.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 사진이 단순히 멋진 자연풍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심상이며 한국의 혼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자신의 사진이 지금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 대해 그는 “지구온난화 위기 시대를 맞아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 점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제 사진을 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들 했어요. 한물간 낭만주의란 지적도 많이 받았죠. 평생 자연과 한국적인 것을 변함없이 추구해왔는데, 이제야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지난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규모 사진전인 ‘포토 에스파냐’의 전체 주제가 바로 ‘자연’이었어요. 그만큼 자연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죠. 그런 추세에서 내 작품이 자연스럽게 세계인들과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소나무는 배병우에겐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울예술대의 유덕형 총장이 했다는 말을 전했다. “당신은 평생 소나무만 찍어라. 한가지 주제만으로도 우주와 소통할 수 있다.”
“하나를 깊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뭔가가 보일 텐데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유 총장의 말이 계속 소나무를 찍을 수 있게 하는 격려가 되더군요.”
사진과 요리 이외에 그가 사랑하는 것은 여행과 와인. 100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끊임없이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했던 미국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삶이 그의 이상인 듯했다. 게다가 오키프처럼 30세정도 어린 애인과 삶을 나눈다면 금상첨화. 그대로 기사에 써도 좋겠느냐는 말에 그는 “물론”이라면서 웃었다.
aeri@munhwa.com
배 작가는…
▲1950년 전남 여수 출생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1978년 홍익대 대학원 공예 도안과 졸업. 1981년~현재 서울예술대 사진과 교수
▲저작:마라도(안그라픽스), 사진디자인(안그라픽스), 소나무(안그라픽스), 배병우(시공사), 종묘(삼성문화재단), 청산에 살어리랏다(열화당)
▲전시회:제1회 개인전(관훈미술관, 1982), 마음의 영역-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일본 미토아트타워, 1995), 배병우개인전(박영덕화랑, 2000), 배병우사진전(인사아트센터, 2005),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미술관 사진전(2006), 가나아트 뉴욕 개인전(2008), 스페인 마드리드 알함브라궁 내 국립박물관 개인전(2009.7.16~)
▲작품소장:현대미술관(한국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일본 도쿄) 휴스턴 현대미술관, 휴스턴 현대사진 미술관(미국 휴스턴), 시카고 21C 미술관(미국 시카고), Sol LeWitt’s Collections (미국), Elton John’s Collection (영국), Afinsa collection(독일), MANGO Collection(스페인), SISLEY Collection(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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