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칼럼/이코노미스트 지가 말하지 않은 '노르딕 모델'의 그늘

bluefox61 2013. 5. 29. 21:49

한편의 통속소설이 학술논문보다 한 사회의 민낯을 더 잘 드러낼 때가 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과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 가 그런 경우다. '북구 스릴러'를 대표하는 두 작품은 복지와 평등, 개방사회를 대표하는스웨덴과 노르웨이에 나치 부역과 폭력의 역사가 얼마나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이민자 등 소외계층이 사회 주변부에서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있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라르손이 '밀레니엄 3부작'의 첫 편을 쓴 것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한해 전인 2003년 쯤이고 네스뵈가 '레드브레스트'를 출간한게 2000년이니, 극우주의자 아녜르스 브레이비크가 우토야 섬에서 광란의 살인파티를 벌이기 이미 10여년 전에 작가들은 지상낙원 복지국가의 허상을 꿰뚫어본 셈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넥스트 수퍼모델(Next Super Model)'로 극찬했던 '노르딕 복지국가'의 명성에 금이 가는 또하나의 사건이 최근 스웨덴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도 스톡홀름의 전형적인 교외 주택지인 후스비에서 일주일 가까이 청년폭동이 이어져 수백대의 자동차가 불에 타고 건물들이 부서지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불량배를 단속한다면서 쏜 총에 맞아 1명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장기실업과 인종주의에 시달려온 이민 청년층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스웨덴의 이슬람 신도 집회>


스웨덴은 인구 15%가 외국에서 태어난 이주민으로, 북유럽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주말을 넘기면서 폭력 양상이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지만,지난 2005년  프랑스 파리 청년폭동과 2011년 런던 청년폭동을 연상케하는 이번 사태에 유럽의 언론들은 적잖이 충격적이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영국 가디언지는 스웨덴 복지의 핵심개념인 '국민의 집(folkhemmet)'이 클리셰(상투적 표현)에 지나지 않게 돼버렸다는 지적까지 했다. 

스웨덴 이민자 폭동은 각국이 직면해있는 복지정책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회성 사건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했던 스웨덴은 복지제도 등 공공부문을 과감하게 개혁했다.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뉴욕발 경제위기와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스웨덴 경제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탄탄한 기반을 유지할 수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개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라면 노르딕 모델의 성공비결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이다. 노조와 기업의 로비를 뛰어넘는 폭넓은 개혁,좌익과 우익의 피곤한 이념논쟁을 포기하고 무엇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인가에만 집중한결과가 바로 오늘날 노르딕 국가란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지속가능한' 복지시스템으로의 개혁을 이룬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복지 소외층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스웨덴 내 사회 갈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폭동을 계기로 계기로 스웨덴 등 유럽에서 반인종주의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이런 배경에서이다. 

 

지구상에 완벽한 '국가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르딕 모델 이전에는 영국 복지모델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고, 지금은 국내에서 독일모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는 혜안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