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방글라데시 사바르에서 8층짜리 건물이 무너졌다. 8일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705명. 붕괴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이 넘어가지만, 파장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집권여당의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쌓은 정치적 연줄을 내세워 사바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건물주가 구속됐는가하면, 건물 안에 있던 8개 공장들과 하청계약을 맺고 저가의류를 생산해왔던 서구 대형 브랜드들은 발뺌하다가 결국 계약관계를 인정해 전세계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바르 인근 의류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비상통로조차없는 건물 안에 갇힌 근로자 112명이 사망한 후 방글라데시 노동계는 물론국제인권단체들이 정부와 서구 대형 브랜드들을 상대로 개선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방글라데시 전국 5000개 의류제조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오늘도 열악한 환경에서 월급 약 40달러를 받아가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난 붕괴사고에 국제사회가 안타까움과 분노를 일제히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첫째, 좌파냐 우파냐, 신자유주의자냐 아니냐 등의 논쟁에 앞서 가난한 나라의 근면한 근로자들에게 들이닥친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하나, 이번 참상 속에서 그리 오래지않은 우리의 모습을 볼 수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빼놓지않고 언급하는 것은 1911년 뉴욕에서 일어났던 악명높은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사건'이다. 여성용 블라우스를 만드는 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관리인들이 문을 잠궈놓는 바람에 146명의 근로자가 불에 타죽거나 창문밖으로 몸을 날려 추락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이민 여성들이었다. 이 사건은 약 90년후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 뉴욕에서 발생한 최악의 인명피해 참사였으며, 미국 역사상 산업재해 4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떠올렸던 것은 '죽음의 공장 ' 원진레이온 사건이었다. 이미 30여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허술한 방독면 하나 뒤집어쓴 근로자들이 치명적인 이황화탄소 가스 속에서 레이온 섬유를 뽑아내는 공장내부를 보여주던 TV뉴스 화면은 아직도 강렬한 이미지로 머릿 속에 남아있다. 독가스 속에서 사실상 무방비상태로 일하던 원진레이온 근로자 130여명이 사망했고, 일부 근로자들은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건물붕괴사건과 글로벌 저가의류 브랜드의 연관성을 짚은 기사를 쓴 후 몇몇 독자들이 댓글로 반응을 보내왔다. "무조건 비싼 옷과 제품을 구매하라는 말이냐"는 지적부터 " 아이폰이 비싸다고 폭스콘 공장 근로자들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렛 운동은 의미있는 새로운 시도"라면서 의류의 공정무역,윤리적 소비 운동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직후, 월트디즈니사가 방글라데시의 공장들과 맺었던 의류생산계약을 취소했다.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를 떠나는 브랜드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브랜드 입장에서는 저임금이 있는 또다른 곳으로 생산을 옮기면 그 뿐이다.
문제는 수출의 80%를 의류에 의존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취약한 경제가 서구 브랜드들의 이탈로 인해 악화될 경우 가난한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있다는 점이다. 윤리적 소비운동의 딜레마인 셈이다. 저임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도국 및 저개발국 정부, 국제기구, 글로벌 브랜드, 그리고 전세계 소비자들의 깊은 고민과 실질적 대안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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