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칼럼/매기의 추억... 마거릿 대처의 죽음을 보며

bluefox61 2013. 4. 17. 14:41

요즘 영국 쪽에서 전해져오는 뉴스를 보면 마치 나라가 두 쪽이 난 듯하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죽음과 장례식을 계기로 쌓이고 쌓인 갈등과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탓이다. 오랫동안 외신을 다뤄오면서 영국을 관찰해왔지만, 지금처럼 영국여론이 양분되기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과 죽음을 둘러싸고 국론이 갈렸던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기사 제목만 살펴봐도 대처에 관한 영국사회의 정반대 시각을 확연히 느낄 수있다. 텔레그래프,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거나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들은 ‘위대한 새 역사의 창조자’‘ 자유의 투자’ 등으로 상찬하고,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 등 중도 진보성향 매체의 기사 제목에서는 ‘사악한 여자(wicked women)’같은 단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대처 자식들이 불쌍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은 신문도 있었다. 영국 노동계,문화계, 학계 일각에 반대처 정서가 넓고 뿌리깊게 박혀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논쟁적 인물인줄은 새삼 깨닫았다.



대처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르지만 ,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처가 집권한 1979년을 기준으로 영국이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경제는 성장이 멈추고 물가상승률이 20%를 넘나들며 파탄 지경에 있었다.치솟는 실업률에다 자고새면 파업이 이어져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다. 

대처는 정권을 잡자마자 공기업의 과감한 민영화 정책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영국 경제와 사회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당시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국가경제를 구하기 위해 총리인 대처로서는 획기적이고, 가차없는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앞에 이처럼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점은 대처의 정책이 남긴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사실 대처는 ‘소통의 리더’이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밀어부치고 보는 ‘신념의 리더’였다. 

한나라를 끌고 나가는 중책을 맡은 지도자에게 신념과 자신감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대처의 경우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처 사후에 출간되는 공식 전기 ‘낫 포 터닝(Not For Turning)’의 저자 찰스 무어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과도한 전투성’이 대처의 정치적 몰락을 자초하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남의 말에는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무어는 “여성으로서 대처는 남성들의 파벌주의와 자기만족적 행태를 참지못해 지나치게 전투적이었고 심지어 각료들까지 몰아부쳤는데, 이 점은 곧 장점이기도 하지만 멈춰야할 시점을 몰랐던 것은 대처의 최대 약점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지도자가 국민의 눈치를 보고 환심사는데만 급급해서는 안되겠지만,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 국민들의 고통을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점을 대처는 보여준다.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만큼 미움과 증오의 대상인 대처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영국과 20세기 현대사에 그가 남긴 유산을 정확하게 평가하기엔 30년 세월이 어쩌면 너무 짧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