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3일 군부에 의해 축출되면서, 이집트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군부는 무르시 축출을 지난 2011년 '아랍의 봄'정신을 계승하는 '제2의 시민혁명'이라고 주장하고있으나 친무르시 및 친 무슬림형제단 진영은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명백한 군사 쿠데타'라며 무한투쟁을 촉구하고 있다. 무르시 정권하에서 노골적인 친이슬람정책을 취해온 이집트가 세속 민주정치체제를 회복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가 하면, 반미·반서구주의를 내세운 극단이슬람세력의 준동으로 이집트가 내전에 가까운 극도의 혼란을 맞게 되리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중동 지역의 맹주 국가인 이집트가 30년에 걸친 호스니 무바라크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지 2년만에 최대 기회이자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4일 현재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은,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과연 쿠데타로 볼 것인가이다. 하루전인 3일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 박탈, 헌법 효력정지를 선언했다. 지난해 5월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과반을 넘는 51.73% 득표율로 선출된 대통령이 군에 의해 강제퇴진당해 구금상태에 놓이게 됐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쿠데타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엘시시 장관은 이날 과도군사정부 대신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을 중심으로 한 민간과도정부 카드를 꺼내들었고, 군부의 개입이 시민혁명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야권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이집트 최고 종교 기관 알 아즈하르의 수장인 아흐메드 알 타이예브 대(大) 이맘,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의 타와드로스 2세 교황을 회견장에 배석시켜 범시민, 범종교권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대선후보였던 아므르 무사 전아랍연맹 사무총장도 4일 "(과도정부에) 조언하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친무르시 및 친이슬람 세력은 군부개입을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주장하고 있다. 법적 명분 면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르시 축출발표 직후 27개 주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면서 "군은 우리의 시신을 밟고 가야할 것"이라며 "전국의 모든 국민들은 거리와 광장을 장악할 준비를 하라"고 독려했다. 실제 알렉산드리아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경찰과 무슬림형제단 지지 시위대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현지언론 알 아흐람은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간부급 약 300명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4일 전했다.
국제사회도 이집트의 민감한 현재상황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런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긴급성명에서 '쿠데타'표현은 일절 사용하지 않으면서 "이집트 미래는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무르시 대통령의 제거(remove)와 헌법 효력 정지란 군의 결정에 깊이 우려(deeply concern)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집트 정부에 대한 지원을 재고(review)하도록 관계 부처와 기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5월 무르시 정부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약15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지원을 결정했다.그러나 미국 법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발생할 경우 해당국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만 놓고 보자면, 이집트 군부개입에 대해 미국 정부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될 수있다. 하지만 자칫 군부 손을 들어줬다가 반미저항을 촉발할 수있다는 점에서 일단 관망자세를 취하면서 가능한 신속한 민간정부 출범을 압박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 극단이슬람주의가 폭발하면서 최악의 유혈 충돌사태가 벌어질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집트는 온건이슬람과 살라피즘 신봉자들을 중심으로 한 극단 이슬람으로 분열된 국가이다. 무슬림형제단은 그 중간지점쯤에놓여 있다. 1990년대에는 극단파 '가마 이슬라미야'에 의한 반무라바크 테러가 준동했으며, 최근에는 수니 근본주의파인 살라피스트들에 의한 소수 종교 및 인종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라피스트 정치 조직인 누르당은 4일 "유혈사태를 막기위해 과도정부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중동전문가 에드 후사인은 3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군사개입으로 "세속 정치체제와 이슬람주의가 공존하는 실험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이집트는 물론 범 아랍권의 극단이슬람세력에게 "이슬람 정권을 창출할 수있는 방법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장투쟁 뿐"이란 해석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사태는 전이슬람권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있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속속 들어섰던 친이슬람정권들이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처럼 과연 군부 또는 세속 시민세력에 의해 강제 퇴진 당하게 될 것인지에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랍의 봄'으로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세속 군부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친이슬람 정권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데 이어, 이번에는 친세속 정권의 거센 역풍이 예고되고 있다.
튀니지 야권은 3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강제퇴진 이후 '튀지니판 타마로드(아랍어로 '반란'이란 의미)'를 선언하고, 친 이슬람 정권 축출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지니에서는 2011년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독재정권이 무너진 다음 선거를 통해 친 이슬람 엔나흐다 당 정권이 들어선 상태이다. 그러나 친이슬람파와 세속주의자들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가, 당초 시민혁명을 촉발했던 서민 경제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아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야권은 이집트 시민사회가 '타마로드'운동으로 무르시 정권을 종식시킨 것처럼, 엔나흐다 당 정권 퇴출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최소 20만명의 서명을 받는 것이 1차 목표이다. 하지만 알리 라라예드 총리는 지난 2일 현지언론들과 인터뷰에서 " 튀니지는 이집트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집트발 제2의 시민혁명이 자국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집트, 튀니지에서 보듯, ''아랍의 봄'이 휩쓸고 지나간 국가들은 여전히 경제적,정치적으로 혼란 국면에 놓여있다. 한때 새로운 변화에 높은 기대를 나타냈던 국민들은 이제 환멸과 회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 예멘에서도 33년간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가 축출됐지만 이슬람 율법체제가 그대로 존속해 국민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리비아는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내전이 종식됐지만, 정치불안이 여전한데다가 극단 이슬람 무장세력의 준동으로 치안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2년 넘게 내전을 치르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이집트 사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변질된 이슬람의 종말을 뚜렷이 나타내는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축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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