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이란 영화의 또다른 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bluefox61 2004. 7. 22. 15:40

할리우드 대형 오락물, 가벼운 연애담과 코미디 등이 점령한 여름시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자 기쁨이다. 
쿠르드계 이란 감독 바흐만 고바디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며 감동이 될 수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부모가 죽은뒤 가장이 되어버린 12살난 소년 아윱이 누나와 어린 여동생, 그리고 장애자인 남동생들과 생존해나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면서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아윱은 6.25전쟁 후 지지리도 가난했던,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묵묵히 감내해내야 했던 우리 부모세대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니, 이 땅 어디에선가 아직도 수많은 소년소녀가장들이 아윱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 영화는 인생경험의 폭과는 무관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고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함의 힘, 진심의 힘이란 말로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영화에서 이란-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짐을 나르는 일꾼들은 말이나 노새들이 살인적인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술을 먹인다. 어느날 술에 너무 많이 취한 말들은 매복강도를 만나게 되자 뛰지도 못하고 눈밭에 쓰러져 버리고 만다. 일꾼들은 저마다 도망쳐버리지만, 동생의 치료비가 될 전재산 노새를 포기할수없는 아윱은 노새에게 일어나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한다. 영화에서 '취한 말'은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힘든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나가야할 '우리'모두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이란 최초의 쿠르드어 영화로, 영화 출연진 역시 모두 쿠르드족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밑에서 일하다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영화적 스승을 바꿨다는 사실에서 고바디 감독의 현실에 대한 인식, 영화적 시각 등을 짐작할 수있다. 모흐센의 딸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의 '칠판'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사람이 바로 고바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