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난니 모레티, 교황 자진퇴임 3년전에 이미 알았다?

bluefox61 2013. 5. 6. 11:12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는 지난 2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격적으로 자진 퇴임을 발표하기 3년전에 이미 이같은 사태를 예견했던 것일까. 교황이 생존시 퇴임을 스스로 밝히기는 약 600년만에 처음. 그만큼 교황은 '신의 대리자'이며,신이 선택한 신성한 직책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퇴임하지 않았던 것은, 교황직이란 감히 사람이 선택할 수없는 직분이란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탁월한 영화감독 또는 예술가란 시대를 앞서가는 법이다. 혜안과 발칙한 상상력을 토대로 말이다. 무성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르가 '달로의 여행'에서 그것을 입증했고, 소설가 아이작 아지모프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로봇시대를 예견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가장 지적이고, 도발적이며, 정치적이고, 불손한 좌파감독으로 꼽히는 난니 모레티의 2010년작 '하베무스 파팜'도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의 예리한 직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사퇴발표가 나오기 약 3년전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미 당시에도 베네딕토 16세의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많았고, 부패와 권력다툼으로 얼룩진 교황청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모레티가 '하베무스 파팜'을 발표하기 몇개월전인 2010년 4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직자 성추행 파문과 우호적이지 않은 평가 속에 즉위 5주년을 맞았다. 포용력과 친화력으로 가톨릭 교회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받은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성향의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후 몇 차례 심각한 설화를 빚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언행으로 다른 종교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게다가 아동 성추행 파문과 관련, 교황 자신이 뮌헨 대주교로 있을 당시 추행 의혹을 은폐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같은해 9월, 베네딕토 16세는 영국방문 중 성추행 피해자 및 가족들을 만나 사제들이 저지른 범죄를 직접 사과하기까지했다. 그렇지않아도 82세 고령인 교황은 사제 성추행을 제대로 엄격히 처벌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더욱 노쇠해진듯 보였고, 결국 2012년에는 교황청 은행 비리사건과 개인집사의 문서유출 사건까지 터지자 측근들 앞에서 울기까지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베무스 파팜'은 콘클라베를 통해 교황으로 선출된 추기경(멜빌)이 이를 끝까지 거부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발코니에 나가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신도들에게 인사하기 직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교황을 위해 급기야 교황청 대변인은 심리상담가(난니 모레티)를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평생을 사제로 살아왔던 교황이 위기의 순간에 의존하는 존재는 신이 아니라 심리학 박사님이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우울증 등 여러가지 진단이 내려지지만 교황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급기야 교황은 산책도중 바티칸을 빠져나와,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결론은 난니 모레티답게 지극히 불손하고, 신성모독적이다. 평소에도 무신론자, 좌파임을 숨기지 않는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뒤엎으려했던 것일까. 스스로 숱한 고질병을 앓고 있는 교회가 '신성'으로 포장하는데만 급급하지 말고, 자기부정을 통해 변화하기를 촉구하고자 한 것일까.

아무튼 결론은 과연 모레티답다. 유머와 풍자가 버무려진 그의 영화는 늘 실망스럽지가 않다. 


모레티는 한 인터뷰에서 "교황이란 엄청난 직책을 받게 된 인물이 느끼는 중압감, 인간적 고뇌를 그리고 싶었다"고 지극히 중립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교계 일각에서는 불손한데다가 사실을 왜곡한 '하베무스 파팜'의 상영 거부운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모레티가 국내 영화팬들과 본격적으로 친해지기는 지난 2001년 개봉됐던 '나의 즐거운 일기' 부터이다. 1994년작으로, 뒤늦게 국내에 알려진 이 작품에서 모레티는 작은 베스파 스쿠터 한대를 타고 로마와 시칠리아를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이탈리아의 현재'를 관찰하고 꼬집는다. 할리우드 영화를 구경하러 극장에 갔다가 기겁하고 나오기도 하고, 전설적인 영화감독 파올로 파졸리니를 추억하기도 한다. 물질주의에 빠져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모레티식 분석도 빠지지 않는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사실상 감독의 독백으로 이어지다시피한 '나의 즐거운 일기'는 독특한 형식에다가 모레티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정신으로 신선한 즐거움을 안겼다. 



사실 모레티는 로베르토 베니니, 잔니 아멜리오와 함께 이탈리아영화의 오늘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 중 한명이다. 혼자서 제작, 시나리오, 배우, 심지어 극장주와 배급까지 겸하는 1인제작 시스템을 지금까지도 고수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모레티의 장편 데뷔작은 68세대의 분노를 그린 <나는 자급자족한다 Io Sono un Autar-chico/ I Am an Autocrat>(1976). 이후 그는 자기만족에 빠진 대도시 좌파 중산층을 비꼬며 당대 최고 배우 가운데 하나였던 좌파 알베르토 소르디를 풍자한 <에체 봄보 Ecce Bombo>(1978), 희망없는 감독의 영화 만들기 과정을 그린 <좋은 꿈꿔 Sogni D’oro/Golden Dreams>(1981), <미사는 끝났다 La Messa   Finita/The Mass Is Over>(1985)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1998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4월 Aprile>은 좀더 정치적인 영화로, 이탈리아 정치사와 모레티 자신의 가족사를 교차시키며 이탈리아 좌파의 흉한 몰골을 드러낸다. 


모레티가 운영하는 사체르영화사의 로고 이미지.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모레티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모습에서 따왔다>


2001년 <아들의 방>에서 갑자기 아들을 잃은 부부의 고통을 다뤘고, 2006년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풍자한 <악어>를 내놓기도 했다. 2008년 <조용한 혼돈>은 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감독의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 그는 부인과 이혼한 후 매일 딸아이의 학교 앞 벤치에 앉아 딸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사색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년남을 연기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2010)

그들 각자의 영화관 (To Each His Cinema, 2007) 

악어 (The Caiman, 2006) 

아들의 방 (The Son's Room, 2001) 

네가 찾는 것 (2000) 

4월 (April, 1998) 

나의 즐거운 일기 (Dear Diary, 1994) 

빨간 비둘기 (Red Wood Pigeon, 1989) 

미사는 끝났다 (The Mass Is Ended, 1985) 

비앙카 (Sweet Body of Bianca, 1983) 

좋은 꿈꿔라 (Sweet Dreams, 1981) 

에체 봄보 (Ecce Bombo, 1978) 

나는 자급자족한다 (I Am Self Sufficient,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