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6월 28일 오전 11시, 보스니아(현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범슬라브 민족주의자인 20세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위계승권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를 향해 총을 쏘아 사살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꼭 한달 뒤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폭탄 공격을 개시했으며, 8월 1일 독일이 룩셈부르크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진격했다. 유럽 전체를 그야말로 피바다로 만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사라예보 사건을 묘사한 이탈리아 시사잡지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피살되기 전의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모습>
<프린치프( 오른쪽 양복을 입은 남자)가 체포되는 순간)>
1차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유럽, 미국 등 관련국에서 풍성한 행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1차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 되는 2018년까지, 앞으로 4년 간 이어질 예정이다.
1차세계대전 추모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영국이다. 이미 2010년 100주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영국 정부는 5000만 파운드(약 879억5,500만 원) 규모의 추모 펀드를 조성, 런던에 1차세계대전 기념관을 짓는 등 관련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공립학교 재학생 전원이 1차세계대전 전쟁터를 직접 찾아가는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립문서보관소는 참전군인들이 직접 기록한 일기 기록들을 디지털 버전으로 공개하는 등 다양한 자료들을 순차적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공영방송 BBC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올해부터 4년간 무려 2500시간 분량의 관련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을 방송할 계획이다.
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던 '사라예보 사건'의 현장에서는 오는 6월 21∼28일 '유럽의 심장 사라예보'란 주제로 국제 행사가 펼쳐지면, 오는 8월 초에는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알사스를 방문해 전몰자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할 예정이다. 이밖에 오스트리아, 벨기에, 폴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에서도 1차세계대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들이 열린다. 적십자는 약 2000만 명에 달하는 전몰 군인, 부상 군인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에서만 연구서, 회고록 등 약 150 종의 신간 서적이 독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며 프랑스에서는 약 300 종의 책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는 6월 '유럽의 심장 사라예보'행사에 참가해 평화콘서트를 갖는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페스티벌에서 전쟁을 테마로 한 다양한 공연이 마련된다.
오는 2월과 3월에는 전쟁의 끔찍한 비극을 몸으로 체험했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의 작품 '보체크'를 콘서트 버전과 오페라 버전으로 감상할 수있는 드믄 기회도 마련된다. '보체크'는 19세기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부크너의 미완성 희곡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베르크가 참전 군인으로서 경험했던 폭력에 대한 고찰이 반영돼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뉴욕시립발레단은 모리스 라벨이 전사한 친구들에게 헌정한 모음곡 '쿠프랭의 묘지'에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작품을 오는 봄 시즌 무대에 올린다.
이밖에 오는 3월 독일 드레스덴필하모니가 연주하는 라벨의 '왼손잡이를 위한 피아노 콘체르토' 도 음악 팬들의 기대를 모으는 공연이다. 라벨이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동생이자 1차세계대전 때 오른 손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슈피겔,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최근 기사에서 1차세계대전이 올 한해 전 세계 문화계를 주도하는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차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 선전포고로 시작해 1918년 11월 11일까지 약 4년 4개월 간 지속된 최초의 세계 대전이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중국 , 태평양 제도 등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연합국과 동맹국을 합쳐 약 1000만 명의 전사자와 약 1000만 명의 부상자, 약 800만 명의 실종자 등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1차세계대전 중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베르덩 전투(1916년 2월 21일∼7월)에서만 프랑스와 독일 군 양쪽에서 약 70 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솜 전투(1916년 7월 1일∼11월 18일) 에서는 연합군 약 62만명, 독일군 약 60만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로 인해 1차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란 표현을 낳기도 했다.
1차세계대전이 20세기 현대사에 남긴 의미는 막대하다. 동맹국이 연합국에 지면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오스만 제국은 세브르 조약, 오스트리아는 생제르맹 조약,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 불가리아가 뇌이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돼 발칸 반도와 중동 지방에서 많은 신생독립국들이 탄생됐다. 패전국인 독일 경우 장기간 전쟁수행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직자가 속출하면서 사회불만이 고조됐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과다한 배상금에 대한 저항이 심화되면서 아돌프 히틀러 정권의 탄생과 2차세계대전을 낳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됐다.
한편 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유럽 강대국 시대가 저물고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평화)'시대가 도래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일본 지배 하의 한국을 포함해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 방지와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연맹이 탄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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