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수렁에 빠진 이라크

bluefox61 2006. 11. 24. 14:10

오늘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꼭 1345일째 되는 날이다. 이라크의 혼란은 이제 더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루동안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사이 이라크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시민들에게 어제(23일)는 지옥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바그다드내 빈민지역인 사드르시티에서 수차례의 자살폭탄과 수류탄 공격으로 16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 바그다드에서는 TV, 라디오는 물론이고 모스크 스피커를 통해 헌혈을 호소하는 긴급방송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수도 한복판에 있는 정부기관에 무장괴한 수십명이 침입해 장관 등을 인질로 잡고 청사를 장악하는 등 관리들이 납치돼 목숨을 잃는 사건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문당한 후 유기된 시신들이 수십구씩 발견되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수니파 무장괴한들이 시아파 주민들을 창고안에 인질로 잡아 놓고 한명씩 처형하고 있다는 끔찍한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괴한들이 버젓이 경찰 제복이나 군복을 입고 정부기관에 난입하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라크 현지의 공권력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상태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엔 이라크 지원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달동안에만 이라크에서는 모두 3709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월간 집계로는 최대기록이다. 지난 3년간 사망한 민간인이 70만명이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난민만 매일 최소 1000명이상, 매달 최소 10만명이 발생한 결과 지금까지 조국을 등진 이라크 국민이 벌써 160만명선을 넘어섰다. 미군 사망자도 매월 신기록을 작성해 현재 3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 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제와서야 “이라크와 관련해 어떤 아이디어와 논의도 받아들이겠다”며 자세를 낮추고 있다. 이라크 국민들이 전쟁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안전해졌다고 큰소리쳤던 모습은 사라졌다.다음달 초쯤에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대통령 자문기구 ‘이라크연구그룹’이 현재 상황과 향후 정책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인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영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도 철군 일정을 거의 확정해놓고 있다.


마거릿 베케트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22일 바스라에 주둔한 자국군 7200명 중 상당수를 내년봄쯤 철수시키고, 현지 통제권을 이라크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의 전쟁은 우리에게 더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를 비롯해 우리나라는 아프가니탄, 인도, 파키스탄, 라이베리아, 부룬디, 수단, 그루지야 등에 이미 평화유지군 형식으로 상당수의 군인들을 파견해놓고 있다. 여기에 이제는 레바논까지 추가되게 됐다. 우리 정부가 레바논에 특전사 대원을 중심으로 400여명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중동의 화약고로 불려온 레바논은 지금 피에르 게마옐 산업부 장관의 피살 사건 이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 속에 빠져 있다.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촉발된 레바논 정정 불안으로 가뜩이나 위태롭게 봉합상태를 유지해왔던 이 나라가 또다시 과거와 같은 내전국면을 맞게 될까봐 전세계가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 시작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대를 맞아, 우리 군의 해외 분쟁지역에 대한 개입은 과거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여당이 정부에 대해 자이툰 부대 철군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등 최근 국내에서도 이라크 철군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 냉철하고도 현명한 전략적 사고와 외교감각이 더없이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