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한해끝에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

bluefox61 2006. 12. 15. 14:11

해마다 이때쯤이면 국내외 언론들은 한해동안 큰 화제가 됐던 10대 뉴스나 10대 인물들을 선정 보도하곤 한다. 올해 10대 국제뉴스로는 이라크전 악화, 인도네시아 대규모 지진, 미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 , 북핵실험 파문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10대 국제인물로는 미국 의회 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직에 오른 낸시 펠로시, ‘록스타’급 인기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민주당 흑인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 프랑스 최초의 여성대통령 후보가 된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등등이 거론되고 있다.


2006년에도 많은 이름들이 국제뉴스를 장식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뒀거나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굵직한 뉴스들 틈에서 죽음을 통해 주인공이 됐던 평범한 이름들이 있다. 


첫번째는 아비르 카심 함자. 아비르는 이라크 남부 마무디야에서 아버지, 어머니, 7세인 동생 하델과 함께 사는 평범한 15세 소녀였다. 지난 3월 11일 새벽, 아비르 집에 갑자기 만취한 미군 병사 다섯명이 들이닥쳤다. 미군들은 아비르를 강간살해했고, 이어 부모와 동생까지 죽이고 유유히 떠났다. 그리고 이제 아비르란 이름은 이라크 주둔 미군이 현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죄악의 범죄를 대표하는 동시에, 이라크의 무법상태, 그리고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호칭이 됐다. 


7월 30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떼죽음 당한 레바논 카나의 어린이 40여명도 올 한해를 보내며 잊지말아야 할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 한명 한명의 이름은 모른다. 다만 ‘카나의 어린이’들로만 부를 뿐이다. 예수가 이적(異蹟)을 행했던 신성한 땅에서 태어난 이 어린이들은 지난 수십년 계속돼온 중동분쟁으로 인해 끔찍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카나 어린이들의 죽음을 지금도 ‘기술적 실수 또는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란 이름도 있다. 그는 10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에서 총에 맞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살해되기 직전까지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고문과 인권유린 행위를 폭로하기 위해 피해자의 증언, 사진을 수집하는 등 체첸의 인권문제를 집중 보도해왔던 러시아의 대표적인 여성 저널리스트였다. 올해 러시아에서는 숱한 인물들이 반정부 활동 과정에서 피살 또는 암살 당했다. 그 중에서도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죽음은 체첸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전세계에 새삼 각인시키는 동시에, 구 공산체제의 민주화 이행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는가를 고발한 뼈아픈 사건이었다.


재미교포 제임스 김의 죽음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의 최후가 국가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것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을 위해 눈보라 속을 헤치고 나간 치열한 희생정신 때문이다. 그동안 재미교포와 관련해 우리에게 주로 각인돼온 것은 하인스 워드나 문 블러드굿 등의 성공 뒤에 있었던 한국 어머니들의 불같은 희생정신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김은 ‘부성애’의 소중함, 특히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세속의 성공에 앞서 ‘가족애’란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 한명은, 바로 5월 22일 과로 끝에 급서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다. 하루 일분 일초를 쪼개서 쓸 정도로 전세계 보건문제 해결에 헌신적이었던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마침 1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취임 선서식을 치렀다. ‘진정한 세계인’이었던 이 전 사무총장 같은 이가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가 한국인 유엔사무총장 시대를 맞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