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다시 가열되는 유럽 안락사 논쟁

bluefox61 2014. 6. 26. 11:30

 

 " 니콜라 본메종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25일 프랑스 남부 포 지방법원의 판사가 평결을 읽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우뢰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 7명에게 독극물을 주사해 죽음을 맞이할 수있도록 도와준 혐의로 재판정에 선 의사 본메종은 격한 감정을 누르기 힘든 표정이었고, 일부 방청객들은 눈물을 비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날,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6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해온 프랑스 남성 벵상 랑베르(38)의 아내 레이첼은 다시 한번 좌절했다. 24일 최고행정재판소 국사원으로부터 남편의 안락사 허용판결을 받아낸지 하루도 채지나지 않아, 25일 유럽인권재판소가 프랑스 국사원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레이첼 랑베르는 "남편이 평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반대했다"며 국사원에 안락사 허용을 요청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랑베르의 부모는 아들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해도 되는지 결정해 달라며 유럽인권재판소를 찾아갔는데 두 기관이 공교롭게도 정반대의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으로 랑베르에 대한 연명치료는 일단 유지하게 됐다.

 

 

 


 유럽이 안락사 허용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본메종 무죄평결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안락사 찬반론이 본격 가열되는 분위기이다. 병원 응급의사인 본메종은 2010년 3월부터 2011년 7월까지 말기암, 사지마비 등으로 고통받아온 여성환자 5명, 남성환자 2명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체포돼 지난 3년간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재판정에서 이른바 '조력자살'을 행하기 전 환자 가족과 충분한 대화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의사로서 환자을 죽게 만들어야했던 고뇌를 토로했고,유가족들은 피고측 증인으로 출두해 흐느껴 울면서 본메종에게 감사를 나타내기까지 했다. 본메종의 변호사 브누아 뒤코 아데는 25일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무죄평결에 대해 "굉장하다"며 "오늘 결정이 안락사에 대한 국가적 논의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말기암 환자에 대한 생명유지장치 제거로 논란을 일으켰던 의사 프레데릭 쇼수아 역시 "안락사는 법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가들이 결정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락사 반대시위>

 하지만 벵상 랑베르 경우에서 보듯, 프랑스에서는 안락사 반대론이 여전히 뜨겁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안락사 허용을 내걸었으나 가톨릭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본메종과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이 나온 25일 파리 시내에서는 안락사 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한편 영국 대법원은 25일 전신마비와 싸우며 안락사 소송을 벌이다 사망한 토니 니클린스의 유족과 전신마비 환자 폴 램이 제기한 합법적인 안락사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안락사 허용은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며 이같이 판결했다.하지만 안락사를 전면 금지한 현행법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국민이 선출한 의회에서 개정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의회의 논의가 지연되면 불가피하게 법원이 나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벨기에, 네덜란드,룩셈부르크이다. 특히 벨기에는 세계 최초로 미성년 안락사까지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말기환자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케이스별로 허용하고 있지만,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의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다. 영국도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2013년 11월>

저명한 학자이자 작가인 86세 부부가 안락사를 금지하는 현행법을 강하게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호텔방에서 동반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돼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80대 노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을 그린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아무르' 를 연상케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에서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고 25일 르파리지엥은 보도했다. 두사람은 파리 검찰 앞으로 보낸 편지 형식의 유서에서 "평생토록 일하며 나라에 세금을 냈는데, 조용히 생을 떠나고자하는 지금 왜 보다 부드러운 방법이 아니라 잔인한 방식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는가"라며 격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사람이 유서를 통해 자식들에게 국가를 상대로 안락사 허용을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르파리지엥은 전했다. 

 

 

 

<이토록 찬란했던 시절도 있었건만.... 26세 때의 베르나르와 조르제트. 르파리지엥 사진 >

 

86세 동갑인 베르나르 카제와 조르제트 카제 부부가 파리 중심가의 유서깊은 뤼테티아 호텔 방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지난 22일이다. 이날 오전 아침식사를 전하기 위해 룸에 들어간 호텔 직원은 노부부가 손을 잡고 침대위에 나란히 누워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플라스틱 봉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 눈에 동반자살이 분명했다. 


침대 옆 테이블에는 편지 한장이 놓여 있었다. 봉투에는 파리 검찰청 주소가 적혀있었다. 편지에서 두사람은 " 보다 부드러운 죽음을 맞을 수있게 하는 약을 먹을 권리를 법이 막고 있다"며 "과연 누가 그런 권리를 막을 수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숨막히는 공포와 고통이 수반되는 플래스틱 봉지를 자살도구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위엄있는 죽음'을 금지하는 프랑스의 현행법때문이란 것이다. 아들은 르 파리지엥과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죽음 보다는 사별과 말년에 (타인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더 두려하셨다"며 "이미 수십년 전부터 적당한 때가 오면 함께 죽음을 맞기로 결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 베르나르 카제는 선물경제학의 권위자이자 철학자이며,아내 조르제트는 작가이자 고전문학 교사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친지들은 " 결혼한지 60년이 넘었는데도 항상 팔짱을 끼고 다니셨을 만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던 분들"로 두사람을 기억하면서 "아마도 상대방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셨던 것같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 2005년부터 말기 환자에 한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의료행위를 중단시킬 수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에서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은 여전히 불법이다. 하지만 노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92%가 말기 환자의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는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