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낄낄 웃더라고 전해줘요.”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지난 5일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미국 16개 정보기관들이 국가정보평가(NIE)보고서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 사실을 공개한 이후, 이란 대통령이 미국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불과 한달 남짓 전까지만해도 이란의 핵무기개발이 3차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국제사회에 경고했으며,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은 시시때때로 “모든 옵션(선택)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말로 대(對)이란 군사작전 가능성을 암시해왔었다.
따라서 지난 3일 발표된 보고서의 내용은 부시행정부의 이란 압박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생어 기자의 표현대로라면 “ 미국 정보 기관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이 벌어진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오마하에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웃음거리’로 치부해버렸지만, 그의 속마음까지 그리 여유만만하지는 않을 듯하다. 이란 관련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위협론을 과장했다는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란이 현재까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물론 없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이 맹렬하게 밀어붙여온 대이란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은 앞으로 급격하게 식어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의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지금 워싱턴 안팎에서는 뒷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타임지 등은 요즘 매일 후속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어떻게 이란의 핵무기 개발 포기 정보를 얻었으며,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정보기관들은 왜 보고서를 공개했을까. 대통령에 대한 전면적인 항명인가,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전략일까.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포기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 보고서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논란의 핵심은 결국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이 과연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느냐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8월쯤 NIE 내용을 보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2주전 백악관에서 NIE 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긴급회의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결국 이번 보고서 공개는 부시 대통령의 동의하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타임지가 보고서 공개를 “부시 대통령의 네오콘에 대한 배신”으로 분석한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을 맹비난해온 존 볼턴 전 유엔주재미국대사는 6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보고서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길을 열어놓았다”고 목소리를 높여 네오콘 진영의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미 언론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보기관과 백악관이 보고서 공개를 단행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라크 학습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2003년 공격을 단행했다가 결국 증거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전쟁을 이어오고 있는 데 대한 교훈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군부가 보고서를 가장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 이란 보고서 파문으로 소란한 가운데,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핵 완전공개를 요구하는 친서를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북한은 물론이고 이른바 ‘악의 축’국가들에 부시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때 이란, 북한과의 전쟁불사 방침을 비쳤던 백악관 안팎에서 뭔가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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