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

재미로 보는 칸영화제 이야기(2)-드레스코드에 얽힌 추억

bluefox61 2015. 5. 27. 10:29

최근 칸국제영화제에서 현장 진행요원이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성을 입장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큰 논란이 됐었지요. 영화배우와 감독 몇몇이 언론에 대고 집행위원회를 비난하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사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집행위원회에서는 현장 요원이 좀 오바를 했고, "우리는 하이힐 필수 착용같은 드레스 코드 없다"고 해명했고요.

 

그 뉴스를 보면서, 오래전 제가 경험했던 칸영화제 드레스 코드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없었지요.

그 때 적은 사연은 이렇습니다.

 

 

세계에서 드레스 코드가 가장 엄격한 곳은 아마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일 겁니다. 

휴양도시로 이름난 칸은 영화제 기간동안 오후 5시만 넘으면 거리에 턱시도 차림의 남자와 화려한 드레스를 빼입은 여성들로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저녁 타임(저녁 8시와 밤 10시)에 상영되는 경쟁작 시사회는 완벽한 정장차림이 아니면 입장을 할 수 없습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취화선`` 시사회 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턱시도나 드레스라는 물건과는 평생 인연이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기자)들은 설마 감독과 같은 민족사람들인데 입장을 막겠느냐는 배짱으로 좀 느긋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딴판이었습니다.
영화제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다른 경쟁작들의 저녁 시사회 입장을 시도했던 몇몇 기자들이 전하는 소식은 정말 흉흉했습니다. 치마만 걸치는 것으로는 턱도 없다. 문에서 옷을 검사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 같은 원피스라도 실크같이 하늘하늘한 소재는 통과 , 면소재 옷은 입구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쫓아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기자는 여자 옷 경우 무조건 목이 푹 파져야 통과라면서, 가져간 옷의 목을 가위로 도려내야 하는지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지요.

폐막 전날로 예정된 ``취화선`` 저녁 시사가 차츰 다가오면서, 한국기자단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남자기자들은 턱시도 대여점을 찾아 칸 시내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고, 여기자들은 저마다 갖고 간 옷을 입어보며 ″이 옷으로 합격할 수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어떤 남자기자는 나비 넥타이를 못 구했다며, 나비 모양으로 오린 종이에 까만칠을 한 다음 고무줄을 연결해 목에 매겠다는 깜찍한 발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취화선`` 시사회날. 멋진 턱시도를 입은 임권택 감독이 여기저기 터지는 플래시를 한 몸에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그 뒤로 어디선가 무사히 빌려온 턱시도를 입은 남자기자들과 어쩡쩡한 치마 차림의 여기자들도 레드 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결국 한명도 낙오자가 없었으니, 어쨌든 한국기자단은 칸의 높은 드레스 코드를 무사히 넘은 셈입니다.

저는 어떤 옷을 입었냐구요?
어깨를 훤히 드러낸 환상적인 드레스...
를 입은 서양 여자들 틈에 끼인
한명의 가련한 넝마소녀였다고만 해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