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미국은 지금 역사 논쟁 중...남부연합 상징물을 둘러싼 논란 격화

bluefox61 2017. 8. 21. 20:59

미국 사회가 남북전쟁 시대를 나타내는 상징물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위 현장에서 자동차테러로 여성 1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이 문제는 이제 역사논쟁 차원을 넘어 유혈사태로까지 확산된 상태다.

 

미국 내에서 남부연합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한 동남부 11개주를 가르키는 용어)시대 유산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인종주의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공공건물에서 추방하자는 주장이 흑인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에 따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정부는 지난 2000년 주 의사당 지붕 위에 게양됐던 남부연합기를 의회 구내 앞마당으로 옮겼다.

 

남부연합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격화된 것은 2015년이다. 그해 619일 딜런 루프란 21세 남성이 1816년 노예들이 세웠던 미국 최고(最古) 흑인 교회인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 들이닥쳐 총격을 가해 9명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루프가 남부연합기를 들고 다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남부연합기를 미국 사회에서 아예 추방해야한다는 요구가 또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힘을 받은 백인 인종우월주의자들이 남부연합을 기리는 조각상을 철거하려는 시 정부 또는 주 정부의 결정에 물리적으로 도전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샬러츠빌 사태도 남부연합군을 이끈 로버트 리 장군의 조각상을 철거하려는 시 당국의 결정을 막으려는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집회에서 촉발됐다.

 

극우 백인우월주의가 준동하면서 반인종주의자들의 대응 역시 격화되고 있다.

 

샬러츠빌 사태가 발생한지 이틀 뒤인 지난 14,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램에서는 인종주의에 분노한 사람들이 남부연합 군인 기념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려 부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기념상은 1924년에 세워져 10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구 소련체제가 붕괴한 후 동유럽 곳곳에서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 동상을 끌어내리고 망치로 부수며 '한풀이'를 했던 것과 비슷한 광경이 미국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지역사회의 논의와 합의를 거쳐 결정돼야하는 기념상 철거가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플로리다주 게인스빌 시 정부는 113년된 남부연합 기념상을 철거했고, 뉴올리언스 시 정부는 남북전쟁 후 연방정부 재가입을 거부했던 인사들을 기리는 조각상 4개를 지난 4월 철거했다. 애너폴리스에서는 1857"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다"란 판결을 내렸던 로저 태니 대법원장 조각상을 철거하자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으며, 켄터키주 렉싱턴 시의회는 지난 15일 남부연합 관련 기념상 2개의 철거를 결의했다그런가하면 코리 부커 상원의원은 워싱턴 연방국회의사당에서 남부연합과 관련된 12개의 조각상을 철거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주에는 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남부연합군 사령관)의 기념상이고, 다음 주에는 조지 워싱턴, 그 다음 주에는 토머스 제퍼슨 기념상이 (철거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을 거론해가며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가뜩이나 민감하고 복잡한 '역사 논쟁'이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갈피를 잃고 감정싸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는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상도 때려 부수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16일 전했다.

 

인권운동 진영은 미국의 인종주의를 상징하는 남부연합기를 추방하고 남부연합 기념상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과거 남부연합에 속했던 주들에 있는 기념상 대다수는 흑백차별을 합법화한 짐 크로법이 1876년에 제정된 이후, 그리고 1950년대 흑인민권운동에 대한 반감과 탄압이 가열됐을 당시 세워진 것들이다. 동상 건립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었으며, 인종차별을 고수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징물을 철거하는 것은 '역사를 지우고 바꾸려는 행동'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어떤 한 시대의 역사가 좋건 나쁘건 간에 그것은 한 국가, 한 민족, 한 사회가 지나온 엄연한 역사이며, 아프고 수치스런 역사의 상징물도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기념상을 무조건 파괴하지 말고, 역사를 좀더 올바로 이해할 수있는 방안을 보완해 전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