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차베스 ..숨지다

bluefox61 2013. 3. 6. 11:17

'21세기의 시몬 볼리바르'를 꿈꿨던 우고 차베스의 야심이 암세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페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어냈던 볼리바르처럼 미국과 자본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된 중남미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겠다는 거대한 계획도 14년만에 결국 막을 내리게 됐다. 

 

차베스는 평생을 투쟁가이자 선동가, 혁명가이자 도박꾼, 그리고 무엇보다 포퓰리스트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공수부대 대령이었을 당시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1992년)했는가하면, 쿠데타로 인해 실각(2002년)당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했고 4번이나 대선에서 승리하는 등 극심한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물보다 값싼 엄청난 석유자원을 이용해 평등한 사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부를 약속하며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체제 하에서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경제와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 정치분열을 해결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실패했다.




포스트 차베스 체제의 베네수엘라가 직면한 최대과제는 경제이다.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30%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국가이다. 공식 실업률은 8%이지만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물가 상승률도 20.9%에 이른다. 베네수엘라는 기저귀나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을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데 달러 부족으로 수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민물가가 폭등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인근의 페루(2.65%), 콜롬비아(2.8%), 브라질(5.7%)의 최대 9배인 19.9%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상승해 화폐가치가 떨어지자 일반 국민들까지 달러 사재기에 나서면서 달러 품귀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석유자원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도도 문제이다. 베네수엘라 세수의 약 45%, 국내총생산(GDP)의 약 12%가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의존도는 95%나 된다. 각국의 셰일가스개발로 국제유가가 낮아지는 추세에서 석유에만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주요지표>
 수도: 카라카스
 면적 :91만2050 ㎢
 인구 :약 2805만명 (2012년 기준)
 화폐단위 : 볼리바
 주요자원 :석유,천연가스,철, 금,보크사이트, 다이아몬드
 석유매장량: 5130억배럴(2010년 미국지질조사국 추정*사우디아라비아는 2667억배럴 추정)
 1일 석유생산량:약250만 배럴
 국내총생산(GDP) : 3380억달러(2012년 기준)
 GDP성장률: 5.7%(〃)
 1인당 GDP:1만3200달러(〃)
 실업률:약8%(〃)
 빈곤선이하 인구비율: 31.6%(2011년 기준)
 인플레이션율: 20.9%(2012년 기준)
 수출/수입총액: 969억달러/566억달러(〃)
 *자료=CIA 팩트북

 

치안부재도 심각하다. 최근 베네수엘라폭력감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베네수엘라 전 지역에서는 2만1600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였고, 그중에서 가장 살인율이 낮은 메리다 주조차도 멕시코나 브라질 살인율의 배나 된다.
 

그러나 가장 급박한 과제는 정치안정과 민주화이다. 차베스 14년 체제하에서 모든 권력은 대통령과 집권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에 집중돼있다. 1819년 중남미에서는 가장 먼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석유자원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바람잘날없었던 국가이다. 

석유를 장악하기 위한 세력간의 다툼과 잦은 정권교체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20세기에 들어서만 쿠데타가 수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차베스를 밀어내려했던 자본가들이 군부를 앞세운 반동쿠데타로 평가되고 있다. 차베스란 강력한 카리스마가 사라진 베네수엘라에서 과연 새로운 정부가 차베스의 기존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지, 아니면 쿠바식 점진적 정치,경제변화를 모색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우고 차베스의 사망으로 라틴아메리카 좌파연대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베스의 이른바 '페트로 디플로머시(석유외교)'의 수혜를 톡톡히 받아온 쿠바,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이 과연 앞으로도 차베스체제에서와 같은 석유지원을 받아 경제를 유지할 수있을지 앞날을 내다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맞먹는 석유자원을 보유한 국가이다. 지난 2010년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 일대 유전지대를 조사한 결과 원유매장량을 최대 5130억 배럴로 추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이 약 2700억배럴로 추정되고 있는 것과 비교할때 거의 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이다. 일각에서는 미확인 매장량까지 합쳐 총 1조3000억배럴에 이른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중 얼마나 채굴 가능하냐는 다른 문제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채굴가능량을 약 약2950억배럴로 보고있다. 그래도 전세계 매장량의 무려 24.8%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를 집권초기부터 석유자원을 국내 통치수단은 물론 반미벨트 구축을 위한 외교수단으로 사용했다. 2005년 차베스는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17개국과 '페트로카리베(Petrocaribe)'협의체를 구성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구입한 회원국이 대금을 장기간에 걸쳐 낮은 이자로 지불하고 일부 대금은 농산물로도 값을 수 있게 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에 맞서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을 발족, 현재 쿠바 니카라구아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8개 회원국이 가입돼있다. 덕분에 쿠바에 일일평균 11만5000배럴의 석유를 베네수엘라로 제공받고 있으며, 니카라구아는 값씬 베네수엘라 석유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베네수라에서 연간 5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지원을 받아 빈곤문제 해결과 인프라 건설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값싼 석유를 내세워 중남미 좌파연대를 공고히한 차베스는 지난 2006년 유엔총회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대통령은 '악마'로 부르고, 이듬해 칠레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에서는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당시 스페인 총리를 '파시스트'로 칭하는 등 오만한 외교자세를 과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석유외교로 대중남미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국을 위협해왔던 베네수엘라의 전략이 과연 앞으로도 통할지는 미지수이다. 맏형 격인 쿠바가 정치,경제민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다가,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로 에너지자립에 근접해있고 국제유가가 하락세에 있는 등 사정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형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정치,경제자유화 및 대미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해오고 있으며, 지난 2월 재선된 라울 카스트로는 2018년 현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계획을 시사하는 등 이미 체제 변화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오는 2014년 대선출마를 통해 3선 대통령으로서 2025년까지 집권을 노리고 있고,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지난 2월 3선에 성공한 후 외국과 맺은 양자협정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제2의 차베스'행보를 계속하고 있지만 과연 두나라가 차베스의 그늘을 벗어나서도 버틸 수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2011년 재선에 성공한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해외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미국과 맺은 중미자유무역협정(CFTA)를 유지하는 등 과거 산디니스타 혁명주의자의 모습으로부터 이미 상당히 탈피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