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양조위

bluefox61 2008. 2. 18. 15:39
[2046]의 스틸 한장 바라보고 있습니다.
양조위가 한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자는 등을 보인채 남자에게 안겨있습니다.
양조위는 여자의 어깨 넘어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한장의 사진에 양조위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은가요.
여자를 가슴에 안은채 이처럼 처절하게 우울한 눈빛을 지닐 수있는
남자가 양조위말고 또 있을까요.

양조위는 자기복제와 쾌락이 넘쳐나는 홍콩 영화계에서
마치 고요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깊어지고 여유로워지는 배우가
바로 양조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할리우드를 거치지 않고도 세계적인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한
중화권 유일의 연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소하고 평범한 외모의 이 남자의 어디에서 도대체 이런 내공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양조위가 국내영화팬들에게 각인된 것은 허우샤오셴 감독의 [비정성시]였죠.
청각장애자인 그의 순박하면서도 절절한 눈빛은 진정으로 잊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였나봅니다. 양조위와 눈빛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은...

이후 그는 [비정성시]에서 가로등 밑을 서성이는 경찰로 찾아왔고,
[중경삼림]에서는 목욕탕의 비누를 향해 ″비누야 너 요즘 수척해졌구나 ,
뭣땜에 그래, 제발 자신감 좀 가져″라고 충고하는 감수성 예민한 남자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중 최고로 꼽는 것은
트란 안 홍의 [씨클로]입니다.
라디오헤드의 크립이 흐르는 어두운 술집에서
쓸쓸함이 온몸을 휘감을 때마다 흘러내리는 코피를 그치게 하기 위해
고개를 젖히던 시인이자 폭력배두목였던 그를 어찌 잊을 수있을까요.
왕가위의 해피투게더에서 동성애인 장국영으로부터 번번히 상처를 받으면서도
되돌아올때마다 그를 맞아들이던 양조위는 또 어떤가요.

[2046]에서 그는 [화양연화]와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는 싸구려 호텔방에서 싸구려 포르노 소설을 쓰며
여자들과 어울리는 3류 인생이죠.
술과 도박,여자에 취해살면서도
한순간 허무와 회한이 스쳐갔던 그의 얼굴표정...
또하나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미지로 각인될 겁니다.


'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 >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킬빌]의 배우들  (0) 2008.02.18
게리 올드먼  (0) 2008.02.18
버지니아 매드슨  (0) 2008.02.18
리즈 위더스푼  (0) 2008.02.18
안젤리나 졸리  (0) 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