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고 새벽 출근을 하자마자 국제전화가 걸려오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난해 9월 28일. 방송은 물론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미얀마(옛 버마) 양곤발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그날 아침, 민주화 열기로 들끓고 있는 그 곳에 문화일보 유희연 기자가 양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시위가 본격화된 후 한국기자로는 처음이었다.
유기자는 불과 하루 전날 서울 한남동 미얀마대사관에서 초특급으로 입국비자를 받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가 태국 경유 양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양곤 공항에서 외국인인 유기자가 과연 순조롭게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있는지, 입국하더라도 시위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양곤시내에서 최소한이나마 안전하게 취재활동이 가능한지 여부를 서울에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더구나 불안했던 것은, AFP 로이터 등 전세계 언론들이 일본 민간 뉴스통신사 APF의 계약직 기자로 일하고 있던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의 죽음을 긴급뉴스로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루전 양곤시내 중심가 술레 파고다(탑) 부근에서 시위 현장을 촬영하던 도중 진압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외신 사진에는 총에 맞아 도로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들이쉬기 직전까지 손을 치켜들어 시위현장을 카메라에 담고있는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일본언론들은 나가이 겐지가 유탄이 아니라 직접 총탄을 맞은 것같다고도 보도했다. 한마디로, 외국 저널리스트임에 분명해보이는 나가이 겐지 기자를 향해 진압대가 의도적으로 총을 쐈다는 이야기다.
나가이 겐지의 사망 뉴스를 처음 접하는 순간, 머리 속을 맨처음 스쳤던 것은 솔직히 "잘못 생각했나?"였다. 기자가 현장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 기자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상상만해도 데스크로서 가슴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유기자가 아직 신혼주부란 사실도 무거운 가슴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한달넘게 한국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불길하게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하루 전까지만해도 ,외국기자가 피살될정도로 미얀마 상황이 이렇게 급속하게 악화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전쟁전 이라크에 취재보낸 기자와의 연락이 끊겼을때 엄청나게 불안하더라고 했던 선배의 말이 그제서야 제대로 실감됐다.
점점 다가오는 마감시간. 여전히 잠잠한 전화기만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 양곤시내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고 시내분위기도 둘러봤다"는 유기자의 반가운 목소리. "됐구나"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자마자, 마감전쟁에 돌입한 덕에 그날 문화일보는 국내처음으로 양곤 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할 수 있었다.
미얀마 현지 취재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일단 기자신분을 밝히고 취재활동을 할 수없는데다가, 미얀마 정부의 강력한 진압으로 시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유기자의 보고에 따르면, 시민들은 두려움때문에 외국인과의 접촉을 극히 꺼리고 있었다.
외신 역시 취재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현지발 기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BBC 등 외신들이 태국 등 인접국에서 미얀마 기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문화일보는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였던 술레 파고다 안팎의 표정, 미얀마의 열악한 경제상황, 시민들의 불안한 모습. 현지진출 한국기업들의 상황 등을 보도할 수 있었다. 모두 현장에 없었더라면 나오기 어려운 기사였다.
일주일쯤 지난 일요일 새벽, 이번에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잠을 깨웠다. 역시 유희연기자였다. 신원을 알 수없는 현지인이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와, 당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없으니 취재를 중단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기자임을 한번도 밝힌 적이 없는데 신원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없는 일이었다. 결국 철수지시를 내렸고, 유기자가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할때까지 또다시 마음이 편치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최근들어 한국언론들의 국제뉴스 현장취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국,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언론과 비교해도 한국언론의 국제뉴스 현장취재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어쨌든 가능한 우리 시각으로 국제뉴스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기자생활의 상당기간을 국제부 기자로 보내면서, 가장 부끄럽고 아쉬웠던 것은 영어권 통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일보 국제부 데스크로서 2007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미얀마 시위 뿐만 아니라, 기획르포시리즈 `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를 통해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있었기 때문이다.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투발루, 우즈베키스탄의 말라가고 있는 아랄해, 홍수로 고통받는 방글라데시 볼라섬, 밀림이 사라져버린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중국 네이멍구의 사막화 현장 등 그동안 한국기자들의 발걸음이 거의 미치지 못했던 오지 중의 오지 속으로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들이 들어갔다. 그런만큼 기사가 인쇄된 신문을 펼쳐들었을 때 느껴진 보람과 자부심은 남달랐다.
양곤의 거리에서 죽음을 맞았던 나가이 겐지는 입버릇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는 누군가가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었다고 한다. 데스크로서, 아니 국제뉴스기자로서 오늘도 현장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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