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노벨 평화상'의 나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총리공관 앞에서 폭약을 가득실은 자동차 한대가 폭발했다. 현장에서 8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진지 불과 약2시간 뒤,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퇴이야섬에서는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집권 노동당의 여름 청년 캠프가 열리고 있던 이 곳에서 사제군복을 입은 32세 청년 아녜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참가자들을 향해 총을 난사해 69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탄테러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현장체포된 브레이비크는 수사결과 극우사상과 반이민주의에 깊이 빠져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테러에만 신경을 곤두세워왔던 유럽은 전형적인 북유럽 복지국가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역내 최대규모의 극우테러사건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4개월 뒤인 11월, 이번에는 독일이 경악했다. 지난 10년간 미결 살인사건 11건이 신나치 극우테러조직의 소행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일명 '국가사회주의지하(NSC)'라는 이 테러 조직의 조직원들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터키 이주민 8명, 그리스인 1명, 독일 여성경찰 1명을 살해했다. 현지언론들은 독일에서만 극우주의자 5600여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실체는 여전히 안갯 속에 남아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에서는 올 한해 극우, 반이민 테러가 급증세를 나타냈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시발점인 그리스에서는 지난 5월부터 수도 아테네 변두리에서 극우조직 청년들이 이주민들을 집단구타하는 사건이 부쩍 증가하고 있으며, 이슬람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사원들이 파괴되거나 방화 피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다.
지난 13일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피렌체에서는 극우사상에 경도된 50대 남성이 백주대낮 광장에서 아프리카 세네갈 이주노동자들을 겨냥해 총을 쏴 2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극우주의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제난으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사회복지비용 감소와 높은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 등이 꼽히고 있다. 여기에 9.11테러 이후 이슬람신자로 대표되는 외국 이주민을 향한 무차별적 증오심이 불을 질렀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현실화될 경우, '희생양'을 노리는 극우주의테러는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기실업에 내몰리고 있는 유럽 청년들의 유입으로 유럽 극우주의의 새로운 세대가 형성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덴마크 의회가 유럽연합(EU) 내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셍겐조약에 가입한지 10년만에 국경통제강화법안을 통과시켰고,네덜란드 의회는 이슬람식 도축인 '할랄'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물보호를 이유로 추진되고 있는 이 법안은 당초 20일 최종표결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일단 내년으로 연기된 상태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잇달아 '다문화 정책 실패'를 선언했다. 내년에 프랑스,러시아 등 유럽국가들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 굵직한 선거들이 치러지는만큼,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극우주의가 파고듬으로써 한층 기반을 넓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노르웨이 테러사건이후 유럽 일각에서는 극우정당의 영향력이 후퇴하고 있다. 9월 노르웨이 지방선거에서 기세등등했던 극우 진보당이 집권 노동당에 참패했고, 같은달 치러진 덴마크 총선에서도 중도 좌파 사민당은 극우 덴마크인민당이 포함된 집권연정을 누르고 승리해 10년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10월 스위스 총선에서는 극우 스위스국민당의 지지율이 20여년만에 처음으로 꺾였다. 이같은 움직임은 노르웨이 극우테러로 경각심이 높아진 유럽 국민들이 민족주의, 인종주의의 극단적인 확대에 대해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럽각국에서 극우정당의 주류정치 편입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서,동유럽에서 극우성향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해있는 국가는 10여개국에 이른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국민전선.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을 누르고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전선은 설립자 장 마리 르펭의 딸인 마린 르펭을 내세워 '보다 유연한 보수'를 강조하며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도 니콜라 사르코지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9일 유럽 정상회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경제적 불확실 상황을 이용해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반대여론을 집결시킬 것으로 전망했다.이탈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헝가리 의회에서 재정통합 등 정상회의 합의사항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것은 극우정당의 요구때문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파산 위기 속에서 새로 출범한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과도정부를 극우 북부동맹 당이 흔들고 있으며, 핀란드 의회에서는 극우 '진짜 핀란드인'당의 요구로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 표결이 치러지기도 했다. 헝가리에는 극우정당 '요빅'이 재정통합에 대해 '난파선에 올라타는 티켓'이라며 비난을 퍼부은 이후 지지율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극우정당들의 이같은 행보는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2012년도에도 가시밭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을 예고하고 있다.
'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 내가 본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형 유람선의 위험한 진실 (0) | 2012.01.16 |
---|---|
2011년의 보통영웅들.. (0) | 2011.12.29 |
통합이냐 분열이냐..2011년 다사다난 유로존 (2) | 2011.12.14 |
확산되는 러시아 부정선거 시위사태 ..과연 제2 민주혁명될까? (0) | 2011.12.08 |
600광년 밖 슈퍼지구 있다 (0) | 201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