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동안 쏟아져 들어온 외신들 중 유독 2건의 기사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하나는 이른바 `볼리우드(인도 뭄바이 영화산업을 뜻하는 속칭)'의 대기업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끄는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와 손잡고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또 하나는 미국의 외교정책전문지 포린 폴리시(FP)와 영국 프로스펙트지가 공동주최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온라인 투표. 터키출신의 온건 이슬람학자 페툴라 굴렌이 이슬람권 네티즌의 몰표 덕분에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같은 세계적인 학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였다.투표결과가 나오자 서구언론계에서는 `굴렌, 너는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먼저, 볼리우드의 할리우드 총공세. 지난 19일 드림웍스는 모회사인 파라마운트와의 3년에 걸친 관계를 끊고 인도의 릴라이언스 빅 엔터테인먼트(RBE)로부터 약6억달러(약 6000억원)를 투자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작사를 만들어 매년 5-6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조건이다. RBE는 인도 3대 부자 중 한사람인 아닐 암바니가 이끄는 미디어그룹 릴라이언스ADAG의 자회사다.
지금까지 볼리우드는 다소 촌스러워보이는 전형적인 인도식 뮤지컬 작품들로 국제사회에 인식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이제는 볼리우드가 할리우드를 넘보는 시대가 됐다. 디즈니사는 이미 지난해부터 인도자본과 손잡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전세계 엔터테인먼트를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 뒤에는 `큰 손' 인도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세상 달라져도 정말 많이 달라졌다.
페툴라 굴렌 뉴스 역시 한바탕의 `소동'으로만 치부할 수없는 생각할 거리들을 남긴다. FP와 프로스펙트가 지난 2005년에 뒤이어 3년만에 실시한 `세계지성 100인'온라인 투표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1위부터 10위를 몽땅 이슬람권 인물들이 차지했다는 점. 이중 알만한 사람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장이자 마이크로크레디트운동가인 무하마드 유누스(2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4위) ,이란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10위) 단 3명뿐이었다.
FP에 따르면, 굴렌 추종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바람에 이같은 결과가 초래됐다고 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다. 서구 네티즌과 똑같이 이슬람권 네티즌들 역시 국제적인 온라인 투표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몰표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이슬람권 네티즌들에게 감사라도 하고픈 마음이다. 우리 시대의 최고 지성인들에게 순위를 매기겠다는 FP의 오만방자한 발상에 `일침'을 날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덕분에 페툴라 굴렌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인터넷을 뒤져볼 마음을 먹을 수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서구언론과 몇몇 국내언론은 굴렌을 `무명에 가까운이슬람권 학자'로 소개했지만, 검색 결과 그는 전혀 `무명'이 아니었다.
뉴스위크의 편집장이자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를 분석한 최근 글에서 "미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들이 뜨고 있다"면서 "세계는 이제 탈미(脫美)주의로 나가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미국이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며, 뒤쳐지지 않으려면 미국도 자기중심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꿔야할 때란 이야기다. 앞의 두 기사는 자카리아의 지적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이처럼 상상이상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볼리우드와 굴렌을 무심히 보아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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