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말을 참 잘한다. 아니, 이 표현은 틀렸다. 그는 말을 `제대로' 할 줄 안다.
말솜씨가 능수능란하다는 것과 말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말을 잘하리란 법도 없다. 제대로 말한다는 것은 진심을 담아낼 줄 안다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최근 오바마 당선자는 새 정부 경제팀 인선결과를 3일에 걸쳐 발표했다. 한번에 할 수있는 일을 오바마는 왜 굳이 3번으로 나눠서 했을까. 지난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나, 그보다 5년전인 노무현 당선자도 국무위원 내정자들을 한꺼번에 발표했었다. 오바마 경제팀에 합류한 7명 중 다수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경제전문가들이다. 대통령 당선 전 자신보다 더 유명했던 이들을 등 뒤에 쫘악 도열시켜놓고 기자회견을 가졌다면 보기에도 위용있고 그의 어깨가 으쓱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3일에 걸친 오바마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그 이유를 깨닫았다.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정부 경제정책 실무자들을 발표하는 첫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 단 1분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겪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뛰겠다는 비장한 약속이다.
예산정책 책임자들을 공개하는 둘째날 기자회견에선 " (연방정부 돈 쓰임새를) 한줄 한줄씩, 한장 한장씩 검토해 낭비를 없애겠다"고 말했다. 2008년 회계연도 미국 연방정부의 적자는 사상최대규모인 4548억달러(약664조원). 지난 7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을 쏟아부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곱지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바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째날 오바마는 경제회복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낼 책임자들을 발표하면서 "워싱턴 안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국방방곡곡, 모든 계층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이 일반국민의 생각과 어려움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막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으니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국정을 아직 책임지지 않은 입장이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냐고? 하긴 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일부 빌리자면 " 정권 출범 전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미국민이 원하는건 상식과 현명한 정부이며 말다툼이 아니라 행동과 효율"이라고 말했다. "내가 받은 53%의 지지율은 어떤 정당이 독점해선 안된다는 지혜를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50%가 안되는 지지율로도 온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만 봐온 우리에게 오바마의 이런 신중함은 차라리 감동이다. 이튿날 바버라 월터스와 가진 TV 인터뷰에선 "사람들이 매일 겪고 있는 고난의 맥박 위에 내 손을 계속 얹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이 없다면, 과연 이런 표현이 나올 수있을까.
지난 4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주변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었던 말 중 하나가 "왜 우리는 미국처럼, 오바마처럼 안되는 거냐"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오바마처럼 경쟁자와 전 정권인사까지 품에 안는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안되는 것인가, 왜 우리에겐 통증으로 욱신거리는 내 맥박 위에 손을 올려놓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정치인이 없는가. 당장 오늘 내일을 기약하기도 어려운데 "3년 뒤엔 좋아진다" "주식사서 1년뒤 부자되라"거나 , 널뛰는 환율로 다니던 회사가 망할 지경인데 " 경제는 가만히 내버려두는게 상책"이라고만 말하지 않아줬으면 하는게 지금 우리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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