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사태와 관련해서 최근 보도가치가 충분한 기사를 의도적으로 낙종했다. 윤리적 이유때문이었다. 문제의 낙종 기사는 외신 사진이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더미 사이로 이제 겨우 세살 남짓돼보이는 소녀 시신이 얼굴만 드러내놓고 있는 사진이었다.
숨을 거둔지 이미 수시간이 지났는지 소녀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흙더미 틈을 비집고 고사리같이 작고 연약한 손 하나만 비쭉 나와 있는 외신 사진도 있었다.가자의 처참한 상황을 100줄의 기사 대신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전달하는 더없이 훌륭한 사진 기사들이었다.그러나 문제는 지면에 게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국 두 장의 사진은 문화일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아니, 이 사진들은 국내 어떤 신문 지면에도 실리지 않았다.
두장의 사진은 윤리적 보도, 공정한 보도란 과연 무엇인가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신문제작에서 독자들이 시각적으로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이미지를 걸러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잿빛으로 변해버린 가자 소녀의 얼굴은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인해 가자 어린이들이죄없이 당하고 있는 피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진들을 게재해야만 했을까. 지구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의 차이를 넘어서서 똑같이 보호받아야한다. 그것이 절대 진리이자 진실이라면, 두장의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지면에서 제외시킨 결정은 과연 공정한 보도태도인가 아닌가.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이 시작된지 13일로 18일째이다.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가자의 상황은 이미 한계점을 넘어선 듯 보인다. 지금까지 가자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900여명,부상자는 3700여명에 이른다. 이중 어린이 사상자만 절반이 넘는다.
이처럼 유난히 어린이 희생이 큰 데에는 가자만의 독특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위치한 360㎢ 면적의 가자지구에는 약 15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이중 약 40만명이 가자시티에 거주하고 있다. 동서폭이 약 6∼12km에 불과한 좁고 긴 가자 땅의 일부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인구밀집도 역시 매우 높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수십년에 걸친 유혈분쟁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성인남성의 수명이 짧다보니, 인구 150만명 중 절반정도인 700만명이 18세 이하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미성년자 인구가 많기때문에 약하고 힘없는 어린이들이 당연히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국제적십자사 소속의 구호요원이 가자시티 부근 자이툰에서 전한 목격담에 경악했다. 구호요원은 이곳에서 숨진 엄마의 시신 곁에 웅크리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을 발견했다. 나흘전 이곳을 폭격했던 이스라엘군이 96시간이 넘도록 적십자사와 유엔 구호요원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는 바람에 아이들은 물도 먹을 것도 없이 생사를 오가는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책임을 어느 한쪽에게 전가하기엔 갈등의 역사와 골이 너무도 길고 깊다. 최근 이스라엘의 한 정부관료가 말했듯이 이 세상에 `깨끗한(clean)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 군은 가자의 건물 1층엔 병원과 유치원이 있고, 지하층엔 하마스 근거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말의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그만큼 현실은 복잡하고 해결하기도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것도 있다.그것은 죄없는 아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막아야한다는 점이다. 이 땅의 아이들이 보호받듯이 팔레스타인,아니 하마스의 아이들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60여년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인종청소'의 비극으로 잃었던 유대의 나라가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이 비극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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