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한국성인은 [킬빌]을 보기에 너무 어린가?

bluefox61 2003. 11. 11. 14:58

퀜틴 타란티노의 [킬빌]이 얼마전 등급분류위원회 등급 심의결과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제한상영극장이 없는 상황에서 제한상영등급을 내린 것은 
개봉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또는 영화사가 알아서 장면을 드러낸 다음 
재심을 받으란 메시지와 다름없다. 
등급위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우마 서먼과 루시 리우의 대결장면의 잔혹성이 
18세 등급의 수준을 넘으며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한상영등급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 장면은 타란티노 감독이 스스로 일본 개봉판과 미국 및 기타해외개봉판으로 
나눠, 일본판 경우는 칼라로, 기타 개봉판은 흑백으로 처리해 
나름대로 잔혹성과 관련한 자체 심의를 한 부분이었다.

국내 시사회에서는 문제의 장면에 대해 
잔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흑백으로 처리해 충격의 강도가 덜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 일부 영화광들은 칼라 버전으로 볼 수있는 일본 관객들이 
너무 부럽다는 의견도 나타냈다. 

영화사 측은 문제의 장면을 1분정도 들어내, 21일 국내개봉일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실은 삭제분이 9분 정도에 이를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수년동안 이 작품을 기다려온 타란티노 팬들로서는 분통터질 일이 아닐 수없다. 
더구나 과연 장면삭제가 타란티노의 동의하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21일로 못밖아놓은 개봉일을 맞추기 위해선 , 현실적으로 감독에게 장면 삭제를 동의받고 
직접 수정을 가하도록 요청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입사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를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국제적인 망신과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 뤽 베송 감독은 지난 97년 방한 당시 [제5원소]가 너무 길다는 이유로 
10분이나 뭉텅 잘려진채 개봉된 사실을 알게돼 
기자회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도 있었다. 
그는 삼성영상사업단를 상대로 법적 제소를 할 생각을 갖고 있었고, 
사업단측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뒤늦게 잘린부분을 복원한다, [레옹]을 재개봉한다, 
베송의 초기작을 수입한다 등등 법석을 떨었다. 
베송은 그의 다음 작품 [택시]에서 한국인을 돈만 아는 노랭이로 그려,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전세계에 전하기도 했었다. 

한국의 성인 영화관객은 과연 등급위의 과보호를 받을만큼 섬약한 정서의 소유자들인가. 
등급위는 [크래쉬][해피 투게더][노랑머리][죽어도 좋아] 등의 작품들을 통해 나타냈듯이, 
국민정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사명을 지닌 기관인가. 
과연 한국의 성인이 [크래쉬]와 [킬빌]을 무삭제로 본다고 해서 
길거리로 나가 아무에게나 칼질을 하고 변태성욕을 자행하는 정신장애자가 된다는 이야기인가. 
이런 영화들이 그동안 국민정서에 얼마나 해악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등급위의 구태의연한 발상이 오히려 왜곡된 호기심과 상업주의를 부추겨왔던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킬빌]정도의 상업영화를 누더기판으로 보아야할 현실이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