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흑백고전영화 2편 추천합니다^^ -인 어 론리 플레이스, 엔드 오브 어페어

bluefox61 2004. 1. 28. 15:08

이번 설날 연휴에 우연히 두편의 DVD를 보게 됐습니다. 
최근 국내 출시된 험프리 보가트의 50년작 [인 어 론리 플레이스(In A Lonely Place)]란 작품과 
데보라 커 주연의 55년작 [엔드 오브 어페어(End of Affair)]란 작품이었죠. 
흑백 고전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최근들어선 웬일인지 통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던 두 편의 영화에 반해버려서, 
아예 옛 영화들을 작심하고 찾아다니며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갖게 됐지요. 
흑백영상은 컬러영상과는 또다른 깊이와 분위기를 갖고 있지요. 
특히 흑백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조명의 예술적인 쓰임새를 잘 살펴볼 수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것같습니다. 물론 최근에도 흑백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있지요. 
코언 형제의 [거기 없었던 남자]는 컬러필름으로 찍어서 흑백으로 다시 처리한 영화로, 
유난히 우유빛에 가까운 뽀얀 흰색 화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 더 론리 플레이스]와 [엔드 오브 어페어]는 
연인 사이에서 빚어지는 의심과 강박관념, 질투와 파괴본능 등의 
심리를 다뤘다는 점에서 로맨스물인 동시에 누아르 계열의 작품이란 공통분모도 
갖고 있지요. 
40,50년대 영화들 중엔 문학작품을 스크린에 옮긴게 많은데, 
[인 더 론리 플레이스]는 미국 여성추리작가인 도로시 B. 휴즈의 소설이고 
[엔드 오브 어페어]는 미국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대사가 단순히 문학적이란 점과는 또 달리,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을 꿰뚫는 듯한 시니컬한 맛을 풍기고 있더군요. 
요즘 영화들과 달리, 대사를 하나하나 씹는 맛을 느낄 수있다고 할까요. 

[인 어 론리 플레이스]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이자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딕슨 스틸(험프리 보가트)이란 남자가 살인사건에 휘말렸다가 
연인과의 관계에서 파멸을 맞는 과정을 좇아갑니다. 
딕슨의 무죄를 확신했던 여자가 서서히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두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갈등심리가 긴장감있게 펼쳐지지요. 
[이유없는 반항]으로 유명한 니콜라스 레이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선셋대로]같은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인간들의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통렬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따르면, 결국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은 
자기 내부의 황량한 마음이겠지요... 

[엔드 오브 어페어]는 지난 99년 닐 조단이 리메이크했던 줄리언 무어 주연의 동명영화 
(국내명은 [사랑의 종말])의 원작입니다. 감독은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연의 
[레인트리 카운티](KBS에서 수차례 방영한 적이 있죠^^)의 에드워드 드미트릭이죠. 

영화는 2차세계 대전 중 영국 여인과 미국 작가 간의 짧은 로맨스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유부녀인 여자와 격렬하고 위험한 사랑을 나누는데, 
어느날 폭격을 맞고 죽을뻔한 일을 겪은 뒤 
여자로부터 이해할 수없는 단호한 이별을 통보받게 됩니다. 
남자는 미칠 듯한 질투심과 상실감으로 여자의 뒤를 밟게 되고, 
여자가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아낸 뒤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99년 닐 조던 영화와 비교할 때, 오리지널은 여자의 선택, 즉 신과의 약속이란 부분을 
좀더 치밀하게 다루고 있더군요. 그래서 99년 작에선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오리지널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있었습니다. 
은근히 섹슈얼한 데보라 커의 절정에 오른 매력을 마음껏 감상할 수있다는 점도 
좋았던 부분이구요. 
오리지널보다 나은 리메이크가 없다는 생각도 새삼 해보게 됐답니다. 

두 영화 DVD에는 각각 커티스 핸슨(LA 컨피댄셜)과 
닐 조던의 '감동적인' 작품해설 리플이 붙어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