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오프사이드

bluefox61 2006. 6. 26. 17:11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이란과 바레인의 마지막 경기. 이란 수도 테헤란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축구열기에 후끈 달아 올라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마다 대형 이란 국기를 휘두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다.

  버스 한쪽 구석에 축구광 십대 소녀 미리엄도 앉아있다. 남자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이란 법에 따르면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경기를 구경할 수 있지만, 경기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군인들의 눈에 뜨이면 바로 퇴장조치를 당하거나 풍기문란 죄로 체포될 것이 분명하다.
  일단 입장권을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아무리 남장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티가 나기 때문에 정식의 매표소에서 표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암표상은 표를 사려는 미리엄에게 "여동생 같은 네가 법을 어기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며 타이르는 척하다가는, 이내 바가지요금을 떠넘기는 약삭빠른 상혼을 드러낸다. 드디어 경기장 안에 들어온 기쁨도 잠깐, 미리엄은 곧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가고 만다. 경기장 바깥에 임시로 마련된 구치소에는 미리엄 같은 축구광 소녀 4명이 이미 붙잡혀온 상태. 제발 경기를 보게 해달라는 다섯 소녀들의 호소는 과연 군인들의 마음을 돌리게 될까.

월드컵 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전세계가 축구 열풍에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이란에서는 여성들이 경기장에서 축구를 직접 관람할 수 없다. 영화에서처럼 법으로 금지돼 있는 탓이다. 최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여성축구관람을 허용하려했다가, 보수파의 비난에 직면하자 기존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외신을 통해 보도된 적도 있다. 그만큼 이란에서는 여성축구관람 허용문제가 '뜨거운 감자'이며, 미국 같은 서구국가들에게는 그것이 이란의 억압된 자유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오프사이드>는 이란 축구광 소녀들의 경기장 잠입 고난기이다. 시사뉴스와 딱들어 맞는 소재도 소재이지만, 테헤란 하층민들의 소외된 삶과 어두운 이면을 소재로 한 전작 <서클> 과 <붉은 황금>에 비해 블랙유머감각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파나히 감독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축구라는 하나는 소재를 통해 이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억압을 드러내는 감독의 주제의식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속에서 축구광 소녀 한명이 군인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우리를 축구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냐". 군인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소녀는 또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 앉지 않냐. 그것도 어두운 데에서." 군인은 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예전부터 법이 그렇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서구문명권의 외국관객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란 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하는 <오프사이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란 영화 특유의 따뜻한 느낌이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으로 잘 알려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란 탓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경기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소녀들을 위해 철책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육성으로 중계방송 해주는 군인들이나, 그들을 도무지 무서워하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십대소녀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이란 사회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지나친 것일까. 군사정권 시절 한국인에게 군인과 경찰이 얼마나 공포스런 존재였던가를 되돌아본다면 더욱 그렇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아마디네자드 정부를 '악의 정권'쯤으로 몰아부치고 있는 것과 <오프사이드>를 통해 들여다 본 이란사회 간에는 어떤 면에서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파나히 감독은 데뷔작 <하얀풍선> 이후 한편도 자국에서 영화를 개봉해본 적이 없는 '불온한 감독'이다. 실제 축구경기 중 게릴라식으로 촬영한 <오프사이드> 역시 이란에서는 아직도 개봉이 금지돼 있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며, 올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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